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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Nov 18. 2022

조선시대 여성의 이름

조선 사회에서 이름이 불린다는 것은 권력을 내어준다는 뜻이다.

상전이 하인을 부를 때나 쓰는 것이 이름이다. 하인은 양반집 갓난아기의 이름조차 부를 수 없다. 양반집 아들은 성인이 되면 자(字)와 호(號)를 지어 불렀고 관직에 오르면 직급이나 작위로 부르고 이름은 공문서에만 사용하였다. 그러니 왕자의 이름은 왕 만이 부를 수 있었다. 왕후조차 아들을 왕자·원자·세자·대군으로 불렀다. 하지만 대군과 왕자들도 죄를 지으면 작위 떼고 이름만 불렀다. 세조 이후에 기록한 『단종실록』 초반에는 안평대군으로 기록되어 있다가 계유정난 이후부터 이름인 용(瑢)으로 기록했다.

그러니 이름은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이르는 명칭’ 일뿐이었다.


여성의 이름은 어떠한가?

『매옹한록』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정언황이 혼인 첫날밤에 신부의 얼굴을 보니 아주 못 생겼다. 그래서 시험해 보려고 이름을 물었더니 신부가 옷깃을 여미고 이름을 말해 주었다. 정언황이 질색을 하며 “처녀가 첫날밤에 부끄러워 신랑에게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이 예의인데, 어찌 단번에 이름을 대는가?” 하니 신부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말하기를 “여행 중에 여관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통성명을 하는데, 하물며 백년을 의탁해야 하는 낭군이 묻는데 대답하지 않겠습니까?” 하는데 그 태도가 의젓하고 우아했다. 이로써 부부의 정리가 매우 돈독해졌다.’


이처럼 조선시대 양반 여성의 이름은 ‘봉인된 금서’였다. 누구 딸, 누구 부인, 누구 모친으로 불리던 습관이 1980년대 까지도 남아 있었다.

문헌에 남은 양반 여성의 이름은 신사임당과 그 딸 화가 이매창, 허난설헌 정도인데 이마저도 호(號)이다. 난설헌의 초명이 초희라고 한다.

그리고 기록에 남겨진 여성의 이름은 아무나 불러도 되는 기녀·노비·죄인의 이름뿐이다. 세조가 단종복위사건 때 처형된 신하들의 아내를 공신들에게 노비로 나누어 주는 교서에 부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공신들은 동료나 선후배의 부인을 종으로 들여놓고 눈이 마주치면 마음이 편했을까 궁금하다)


    부친과 남편과 아들을 따라야 살 수 있었던 조선의 여성들은 과부가 되어도 시가에서 홀로 살면서 남편의 신주를 받들고 제사상을 차리거나 남편 따라 자결을 해야 절부로 칭송 받았다. 과부가 된 딸을 재혼 시키면 그 부친은 관직에서 퇴출되었다.

이런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여성은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다.


이름이 없으면 피해자도 없는 것이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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