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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Jan 26. 2023

토끼 가면을 집은 아이는 어찌 되었을까?

초등학교 운동회 때, 1학년은 동물가면 달리기를 했다.

호랑이, 토끼, 거북이, 원숭이, 여우, 돼지, 소, 늑대 등의 종이가면을 출발선 10 미터 지점에 두고 달려가

가면을 집어 얼굴에 쓰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경기였다.


남자아이들은 호랑이가면을 집으려 했고, 여자아이들은 토끼가면을 집으려 경쟁했다.

나도 그 귀여운 토끼가면을 집으려 했다. 하지만 다리도 느리면서 토끼 가면을 고집하다 결국 거북이나 돼지가면을 집어야 했다. 토끼가면이 아니라 실망해서 가면을 쓰기도 싫어서 늘 꼴찌가 되었다.


달리기 잘하는 친구가 1등 하는 비결을 알려 주었다.

아무 가면이나 자기 앞에 있는 것을 집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토끼가면 집으려 경쟁하는 사이에 두어 발은 더 앞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돼지가면을 쓴다고 돼지가 되는 건 아니었다.

이제 어떤 가면이라도 선택할 준비가 되었는데,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2학년 때부터는 동물가면 없이 그냥 달리기를 했던 것이다.


학교라는 통관절차를 거쳐 사회에 나오니, 모두들 보이지 않는 동물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 동물가면은 등급이 되어 있었다.

호랑이가면을 쓴 사람은 조직(또는 사람)을 호령하고 있었고, 늑대가면을 쓴 사람은 정직원이 되고, 토끼가면을 고집하던 나는 작은 발 소리에도 움츠러드는 미생이었다. 한동안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 재등급을 받고 싶었었다. 


반 세상 건너와 보니, 풀 뜯어 먹는 토끼의 삶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푸른 풀밭에서 뒹굴거리고 꽃그늘 아래에서 낮잠도 자고 옹달샘의 달고 시원한 물을 세수도 안하고 즐길수 있었으니 말이다.


히히, 꼴찌가 궁색한 변명을 해 보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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