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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Oct 19. 2023

불행론

우리가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까닭은 세상이 엄청 넓어졌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마을씨름 1등만 해도 박수 받고 막걸리에 무등까지 태워주었는데, 

이웃 마을한테 줄다리기라도 이기면 한 해 농사 풍년이라고 얼싸안고 춤추며 잔치를 열었는데,

지금은 고을 1등 나라 1등이 아니라 세계 1등을 해야 쳐 주는 시절이 되었다. 

그러니 행복한 사람이 몇 안 된다. 


우리가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까닭은 세상이 풍성해졌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대추 곶감 한 알에도 설빔 한 벌에도 좋아서 폴짝폴짝 뛰었는데,

지금은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비단구두가 신발장에 가득한데도 

상어 지느러미 자르고 악어 옆구리의 가방을 못 빼앗아 안달이다.


우리가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까닭은 세상이 너무 좁아졌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누구네 아기 낳은 소식이나 술 익었다는 소식이나 훈훈히 담을 넘어 다녔는데,

지금은 먼 고을 사고소리 먼 나라 전쟁소리를 자는 귀에까지 퍼 넣어주는 시절이 되었으니.

게다가 남 잘 되는 꼴은 못 보겠다고 손가락 끝에서는 비수가 날아간다.


우리가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까닭은 세상이 가난해졌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이불에 오줌을 싸면 소금이나 담아주며 키 쓴 대가리 한 대 때려 주는 걸로 퉁 쳤는데, 

지금은 바람에 뉘 집 처녀 치마만 뒤집어져도 뒷담을 넘은 소문이 이틀 만에 지구를 돌아 무수한 손가락에 찔려 죽고 마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가 다 함께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들에 나가 물어보았더니 

바람은 이마를 쓸어주고 가고 

물은 발을 씻어주고 가고 

나무는 사과 하나 따 주고 

바위는 그저 볕에 데워 진 등을 내밀었다.

나는 사과를 베어 먹으며 오래오래 앉아 있었다. 

벌 한 마리 단내 맡고 마실을 나왔다. 

어딘가 꿀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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