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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Oct 30. 2023

불멸의 놀이, 딱지치기

어린 시절 우리는 딱지치기 놀이에 열광했었다. 

사각의 뿔을 세워 서로의 가슴팍을 떠밀고, 더 두꺼운 종이를 찾아 달력과 백과사전을 거덜 내면서 상대를 뒤집으려 기를 썼었다.

대화의 기술도 타협의 기술도 창조되기 이전의 세계였다.

교과서에도 없던 타협의 기술들을 졸업 후 사회로 나와서 비싼 값에 ‘야매’로 배웠다. 서로 떠밀고 뒤집으며 익힌 타협은 영혼에 상처를 남겼다.

그래도 조금씩은 양보하고 이해할 줄 아는 사회가 된 줄 알았다.


그런데

비인기 종목이 된 그 놀이를 박물관에서 소환하여 재활용 한다는 소문이 높은 단상에서부터 무성하더니, 매일 매시간 딱지를 두드려대는 소리가 대지를 울린다.

만 바꾸려는 어른들의 딱지치기는 과거지향적이구나.... 탄식하는 사이, 단상 아래의 성인들도 다시 딱지치기를 시작했다.

뉴스 댓글창에 무수히 떠다니는 비속호칭들, 양쪽으로 나뉘어 서서 자기의 이익에 거슬리는 이의 이름을 비속어로 호칭한다.


우리는 좀 더 정의로워 질 수는 없을까?

상대가 삐딱하게 서 있다면 라도 바르게 선 자세를 보여야 멋있지 않을까?

상대의 정의롭지 못함을 꼬집을 때에 정의롭지 못한 말과 행동으로 지적하면, 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말하는 이의 위신만 깎을 뿐이다. 그리고 결국 말꼬리잡기 놀이로 전락한다.

국회에서 언성 높이는 의원은 자기가 멋있어 보이는 줄 아는 걸까? 하지만 작은 목소리로 정중하게 꾸짖는 의원에게 더 신뢰가 쌓인다는 것을 알까?


윗물이 정의롭지 않으면 이렇게라도 말해 볼까?

 "아랫물이 맑을 테니, 윗물도 좀 맑아 줄래?"



.......이상은 소심한 이상주의자의 혼잣말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DEfZWRTk-52d6_2HaujV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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