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필향나무 Mar 20. 2023

지켜주기 역할할래.

난 교보 문구나 알라딘 보다 독립 서점에 가는 걸 더 좋아한다.

좋아하는 독립서점에 가 책 몇 권을 골라 샀다. 집에 돌아와 그중 끌리는 책 한 권을 집었다. 책을 읽다가 책 속 한 구절을 보고 그녀 생각이 났다. 비록 글의 구절을 그대로 여기에 쓸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게 마음을 다 쓰고 나면 나에게 줄 마음이 남아 있지 않다'는 내용이 담긴 구절이었다.

그녀에게 이 구절을 말해주고 싶었다. 주제넘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에게는 그 말이 필요해 보였으니깐.



이런 마음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에겐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친구가 있다. 그녀는 나에게 남자친구에게 서운한 점이 많다며 말했다.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 생각에 대해 이야기해봤지만 남자친구의 답변에 더 서운함을 느낀다고,

주변 친구들에게 남자친구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하나같이 다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다 말한다고,

그런 말들을 듣는 것 자체가 너무 속상하고 헤어지고 싶지 않은데 진짜 헤어져야 될 것 같고

자기가 생각해도 아닌 것 같은데 정작 마음이 그렇게 안 되는 게 답답하고 스트레스는 받는다며

그녀가 말했다.



난 그녀와 함께한 시간이 10년째라 그런지 그녀가 생각이 많은 게 너무나 잘 보인다. 그녀는 대놓고 얼굴에 ‘나 지금 생각 많아! 너무 복잡해 미치겠어!’라고 써 놓는 편이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다. 

그런 그녀의 상황과 마음을 알고 있어 그런지 그 책의 구절을 읽자마자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참 다정한 사람이다. 어쩌면 내 주변 사람들 중 가장 '다정함'이라는 걸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편이다. 하다못해 자기가 싸운 것도 아닌데, 자기한테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자기 일도 아닌데 그렇게 공감을 잘해 줄 수가 없다. 누군가를 챙겨 주는 것도 좋아하지만, 정도 잘 주고 정도 많은 편이고, 누군가에게 마음 주는 걸 좋아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는 편이다.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애초에 사람을 잘 의심하지 않고 그 사람의 상황을 최대한 이해해주려 한다.

비록 이건 그녀에 대한 나의 추측과 생각에 불과해 이 또한 오만한 생각일 수 있다. 아니면 친구니깐 팔이 안으로 굽는 거일 수도 있다. 그래도 감히 말하지만 그녀의 다정함을 본다면 나와 비슷하게 말할 것이다.

나와는 성향이 너무나 다른 사람이다. 적어도 나라면 의심부터 하고 그 사람의 모든 면을 최대한 팔짱 낀 상태에서 보는데… 그녀와 달리 난 누군가에게 마음을 잘 주지도 않을뿐더러, 마음 주는 걸 좋아하지 않아 웬만하면 마음을 주지 않으려 한다. 만약 마음을 주더라도 그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



이런 나와 다른 그녀를 보면  신기하면서 놀라울 때가 많다. 너무 달라서?

그녀에 대한 생각을 곱씹어 보면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라서인지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을 잘 주는 그녀도, 마음을 주지 않으려 하는 나도, 잘못된 건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런 그녀를 보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한테 "정을 빨리 주지 마라", "너무 마음을 쉽게 주는 거 아니냐"라고 말할 수 있다.

아마 그 사람들도 다 그녀를 생각해서 아끼는 마음에 속상해서 "정을 주지 마라", "마음을 주지 마라", "너무 그렇게 생각해주지 마라"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겠지.



난 그녀에게 그녀를 바꾸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위로하고자 편지를 쓴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를 그대로 놔두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 역할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일은 쉽지 않다. 자신의 마음을 써서 그 사람에게 주는 거니깐.

어쩌면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도 많다.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을 주면 약점 잡힌다고 생각해서인지 연애에서 을이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님 성격이 원래 그런 건지 등등 각자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걸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 역시 많은 사람을 만나보진 않았는데도, 그런 생각이 든다. 마음을 받아 본 사람이 주는 것도 잘 안다고. 무조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흔히들 하는 말 중 하나로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요"라는 내용의 끝은 "표현하세요"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다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상대방에 대한 좋은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많을지 언정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을 알아 실천하는 사람은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가식으로는 많이 봤지만)

그저 그녀는 마음을 줄 주 아는 사람일 뿐이다. 마음을 줄 주 아는 사람은 누군가의 마음을 받았을 때 감사함을 모를 수가 없다. 자신이 어떻게 마음을 썼는지 알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무시할 수가 없다.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마음뿐만 아니라 뭐든 무시할 수 있겠지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싫어하는 점도 무시하기 힘든데,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그녀의 연애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그 사람이 어떻다 저렇다 이야기할 입장도 자격도 없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서 자책하지 않았으면 했다. 속상하지 않았으면 했다.

마치 자기가 과한 사람인 양, 자기가 쉬운 사람인 양 생각하지 말았으면 했다.

그냥 내가 그녀의 상황이라면, 한 명이라도 이렇게 이야기해줬으면 했을 것 같았다.



"네가 마음을 쉽게 잘 주는 게 아니라고."


"네가 정을 빨리 주는 게 아니라고."



그렇다고 편지를 읽고 그녀의 고민이 없어지고 해결되는 건 없었다. 그 후로도 남자친구에 대한 복잡한 생각과 고민과 스트레스가 끊이지 않았다는 걸 부산여행 중 회에 소주를 먹으며 한번 더 알게 되었다. 술을 먹어서 더 그렇게 보이는 건가 그를 포기한 듯이 힘없이 울며 이야기하는 그녀를 보고 남몰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 우리한테 이야기하기 전에 혼자 쏟아낼 만큼 쏟아낸 다음에야 꺼낸 거구나 싶었다.

내 생각보다 생각이 많고 여린 사람이었다. 난 그저 그녀의 이런 여린 마음을 옆에서 잘 지켜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저 이 여린 친구를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이 생각만 가득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서 그냥 그녀 옆에서 가만히 듣는 걸 선택했다.

들어준다고 해서 해결되진 않지만, 들어줘서 해결될 수 있길 바랐다. 괜찮아 지길 바랬다.


 

그냥 그렇게 좀 되지 말이야. 그렇지?





그녀의 마음으로 다정함을 봤어.

그런 다정함을 볼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그녀 덕분에 다정함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

마음은 조금이라도 다른 색을 떨어트리면 금세 다른 색으로 변한다는 걸.

그렇기에 마음을 주는 일은 한없이 하얗고 순수하다는 걸.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한 나에게 그녀 덕분에 이런 마음을 알게 되었어.

혹시나 다른 색으로 바뀌더라도 그녀의 마음은 하얗다고 옆에서 말해줄게.

되도록이면 지켜줄 수 있도록 할 거고,

되도록이면 옆에 있을게.

그녀의 하얀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그저 옆에 있을게.


작가의 이전글 그녀는 주는 게 좋아? 받는 게 좋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