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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향나무 Mar 24. 2023

알록달록한기만 한 유니콘인줄 알았는데.

그녀에게 편지를 써 준 날이었다. 생일날도, 특별히 축하할 일이 있는 날도 아니었는데 문득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 편지를 썼다. 그 글 속에 많은 말들을 썼다.


"다른 사람이 뭐라하든 적어도 나는 그녀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니깐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_편지 중 일부분_


대게 위로와 응원, 무엇보다 그녀를 많이 아낀다는 그런 내용들.

그런 마음으로 그 날 편지를 썼다.



편지를 주고 난 후 어느 때와 같이 본가에 내려갈 일이 있어 본가에 간 김에 그녀를 만났다. 그러다 글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는 타고 넘어가 편지에 대한 생각까지 갔다.

그러더니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마자 그때 준 편지! 그녀 요새 힘들었어? 뭐 힘든 일 있었음?”


“아니 왜?”


 “아니 그런 내용을 썼길래.... 요새 힘들었나 해서”


“아니. 아니 왜? 아닌데?”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근데 나도 눈물 찔끔 날 뻔했음”


“내가 요즘 힘들지 않아서 그런가 근데 만약에 나도 힘들었을 때 받았으면 진짜 엉엉 울었을 듯”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그냥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하고 아무 생각없이 넘겼다. 간단히 맥주를 마신 뒤 그녀들과 헤어지고 집에 와 양치를 하다가 문득 그 대화가 생각이 났다.

들었을 당시에는 그게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니었나 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쓴 편지를 받고 감동과 고마움을 말하거나 그에 따른 답장을 써줬다. 물론 나 또한 누군가의 편지를 받으면 고맙고 기쁜 마음을 말했다. 그녀가 말한 편지를 받고 난 다음은 고마움과 기쁨이 먼저가 아니었다. 고마움과 기쁨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준 편지를 보고 내 걱정이 먼저 들었나 보다.

그 편지를 보고 내가 힘들어서 그런 말을 털어 놓은 건가 했나 보다.

내 일기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고민을 털어놓은 것도 아니고, 편지인데 말이다. 그저 내가 그녀에게 써준 말들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그 와중에도 날 걱정했었다. 물론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해서 무슨 일이 있었나 했을 수 있지만, 나였으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기거나 이 사람 생각이구나 하고 말았을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깐 그 사람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어느정도 있겠지만, 편지를 준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지 속 내가 쓴 말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하는 편이거나 그저 그녀가 날 생각해주는구나 감동이다로 끝나는 편이 많지, 내가 쓴 말을 보고 나의 상황이나 기분을 생각한 사람은 드물었던 것 같다.

이런 나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편지를 쓴 사람의 마음을 먼저 본 것 같았다. 이 글을 보고 그저 그냥 평소에 안 하던 말이라서 혹은 그냥 갑자기 그런 말들을 하니깐 의아해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가벼운 생각으로

‘그냥 힘들었나? 갑자기 이런 말을 다하고……’ 이렇게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그녀의 말이 이렇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편지 감동이야. 고마워’ 라는 말보다 더 좋았다. 오히려 그녀의 마음이 더 와 닿았다.



중학교 2학년 때 그녀를 처음 봤다. 서로의 친구 중에 같은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를 통해 다 같이 친해지게 되었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와 친구가 된 지 올해가 10년째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서 그런가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영원히 다 알 순 없겠지만. 그래도 꽤 오랜 시간을 봐왔으니 하나도 모른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와 나의 성격이 다름에 놀란 적은 많지만, 그녀의 말에 놀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그 날 처음으로 그녀의  말에 놀랐다.



그녀는 항상 내 예상과 다르게 행동하고 말하고 반응해서 짐작하기 힘든 참 알록달록한 유니콘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그녀는 순수하다면 순수하고 순하다면 한없이 순한 사람이다. 어쩌면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단순하거나 생각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다. 적어도 나를 생각하는 데에서는 단순하지 않다. 그러니 편지를 받고 요새 힘들었냐는 말이 먼저 나오는 사람인가보다.


그냥 알록달록하기만 한 유니콘인 줄 알았는데 따뜻한 유니콘이었네.




편지 감동이라는 말보다 그녀의 물음이 더 좋았어

그녀가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든.

진지하게 물었든.

그게 뭐였든 간에.


그냥 물어본건데 왜 이렇게 진지한데? 당연히 평소에 안하던 소리 하니깐 그냥 물어본건데.. 라고 한다면,

전자라면 그 질문을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아서였고,

후자라면 내가 평소에 안하던 소리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나한텐 그녀의 질문은 그냥이 될 수 없어.


난 알록달록 유니콘이든,

따뜻한 유니콘이든,

차가운 유니콘이든,

그녀라면 뭐든 좋으니.

그녀가 언제나 유니콘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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