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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향나무 Mar 30. 2023

Q. 이런 마음은 어떻게 들 수 있어?
A. 그냥..?

이유는 없어. 이유가 꼭 있어야 된다면 그냥이 이유야.

그녀는 며칠 전 힘든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날은 그녀의 면접 날이었다. 그녀에게 연락을 해 면접을 잘 봤냐고 물어봤다.

한참 동안 답이 없다가 밤이 돼서야 연락이 왔다.


"면접 방금 끝났어. 와 진짜 힘들었어."

"세상에 면접을 하루종일 봤다고? 그녀 얼른 쉬어.. 밥 챙겨 먹고"

"그냥 계속 누워 있어 회복 중.."

"내일 보아..."

"응 낼 봐"


그날 밤까지 작업을 하고 있다가, 문뜩 그녀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응 낼 봐"

평소 그녀의 대답과 별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힘든 일을 겪었다는 걸 알아서인지 참 이 말이 세상 무겁게 들렸다. 힘 없이 들렸다. 아무런 기운도 없이 침대에 누워서 카톡을 보냈을 것 같은 게 보였다. 얼마나 힘이 없으면, 얼마나 기빨렸으면, 그날 얼마나 고됬으면...

이런 힘없는 그녀의 모습이 상상돼 갑자기 그녀에게 무언가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뭘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녀가 조금이라도 다시 괜찮아질 힘이 생길까. 고민을 하다가 책자를 하나 만들어주기로 했다.


오둥이 책자 만드는 과정

그녀는 '오둥이'이라는 캐릭터를 진짜 좋아한다. 그녀의 생일날 오둥이 편지지를 만들어 준 적이 있는데 엄청 좋아했던 게 기억나 이번에도 오둥이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둥이로 위로해 주면 조금이라도 그녀가 웃지 않을까 했다. 이런 마음으로 작은 책자를 만들었다. 종이를 잘라 오둥이를 그리고 스토링텔링처럼 연결되게 만들었다.

그다음 날 실기실 청소날이어서 실기실에서 그녀를 봤다. 청소가 다 마무리되고 사람들도 다들 간 다음에 그녀에게 작은 오둥이 책자를 건넸다. 그냥 건네주고 괜히 다른 것들을 정리했다.



"아 뭐야 진짜....."

"나 울 것 같아 진짜.... 나 지금 감정이 좀 그런 상태란 말이야 아직 회복 안됬단 말이야"

"아 왜 우세요... 에이."

다시 그녀에게 가보니 혼자 살짝 울고 있었다. 혼자 눈물을 몰래 닦고 있더라.

"아 진짜 뭐야... 그녀 고마워... 아니 언제 만들었어?"

"아 그냥 어젯밤에 갑자기 생각나가지고 아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나 봐 그냥 이런 거 만들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나더라고 그리고 잠도 안와 가지고"

"정말 사부작걸이네.."

"앗싸 울리기 성공이다"



또 오랜만에 만나 실기실에서 얘기를 하다가 저녁에 술을 마시러 가기로 했다.

저번에 맛있게 먹었던 김봉남의 포장마차에 가서 우리의 부추꼬꼬(삼계탕)를 먹었다.

그녀는 면접을 날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난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녀의 우는 모습을 많이 봐왔지만, 그날은 감히 내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가 힘들었겠구나 참 그 힘든 걸 혼자 견디느라 마음이 안 좋았다.



그날을 얘기해 주다가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나 아직 마음이 회복이 안됐는데, 오둥이를 주면 어떡해...... 진짜...  근데 오둥이 때문에 뭔가 마음이 내려갔어"

"오 진짜? 다행이다..."

"근데 그녀 이제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어. 그냥 네가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어하지 마. 아니 이런 마음이 어떻게 들 수 있어.....?"

"...... 그냥..?"



나에게 이런 마음이 어떻게 들 수 있는지, 어떻게 드는지 물어봤다. 근데 대답을 할 수 없다.

어떻게 드냐고? 그냥...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냥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 어떻게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설명할 방법을 몰랐다. 그냥 책을 읽다가 갑자기 그 사람과 나눈 마지막 카톡을 보고 오늘 많이 힘들었겠다 되게 지쳤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책자를 하나 만들었는데….? 어떻게…?



이 마음이 어떻게 해서 들었는지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인지 아님 생각을 할 문제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냥 진짜 그냥 그렇게 책자를 만들고 있었다. 생각을 좀 깊게 한 부분이라면, 그녀의 상황에 나를 대입해 봤다.

만약 내가 오늘 하루가 너무나 힘들고 지쳐. 아무한테도 말하고 싶지 않고, 진짜 너무 힘들어서 이 힘듦을 설명하는 것조차 지치고 힘들 때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해준다면, 이런 책자를 만들어준다면, 비록 해결이 되거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 번에 마음을 훌훌 털어낼 수 있다거나, 내 마음이 단숨에 괜찮아지거나 그렇진 않더라도 어이없어서 한 번은 웃을 것 같았다. 

그거면 됐을 것 같다.

어이없어서 웃든 웃겨서 웃든 한번 웃을 수 있음 그걸로 됐을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작지만 큰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면, 이렇게 생각이 들어서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어쩌면 아무나 나에게 이렇게 해달라고 소리치는 거일 수도 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봐 주길 바랐나 보다.

내가 힘들 때 이렇게 해줄 사람이 있으면 했나 보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고 싶었나 보다.

비록 내 마음은 누가 알아봐 줄지 모르겠지만, 너의 마음은 내가 알아보고 싶었다.

그녀가 "내 마음을 아무나 알아봐 주길 바라"라고 말할 때까지 두고만 있지 않고 싶었다.

그녀가 그런 말을 내뱉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그런 말을 내뱉지 않도록,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그래서..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그렇게 뭘 자꾸 하고 싶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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