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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향나무 May 03. 2023

그렇게 편지를 자주 쓰세요?

네 아니요

"근데 글을 쓸 만큼 그렇게 편지를 자주 쓰세요?"


"그렇게 편지를 많이 쓸 일이 생기나요?"


"아니요."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것도 아니고

편지를 자주 받는다고

말하고 싶다.


편지를 한꺼번에 꺼내 모아 보면서, 가만히 보다가 이제 글을 뭘 써야 될까 고민한 적이 있다. 그럴 때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럼 또 글이 쓰고 싶어 진다.


그렇게 이것저것 끄적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주변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을 꼽씹어 보고 내 생각들을 적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혹시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을 무시한 건 아닌지, 혹은 내 마음이 잘 표현되었는지, 혹은 그 사람은 힘들다 어떻다 알아봐 달라고 말하고 있는데 내가 못 들은 건 아닌지 등등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좋고 싫고 내 생각과 마음이 확고해지는 편이다.


곱씹어 봐서 그런지.

깊게 생각해서 그런 건지.

하나하나 따지고부터 봐서 그런 건지.

그 사람이 내뱉은 말이나 쓴 글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말로 가려진 속마음이 조금은 들리는 것 같다.


한 번은 곱씹어야 말로 가려진 그 사람의 속마음이 들리는 게 싫을 때가 있다.

좀 한 번에 알 수는 없었을까.

그때, 그날 알 수는 없었을까.

왜 곱씹어야 그제야 들리는 걸까.

곱씹어야 들려서 더 소중한 걸까.

그래서 더 그 마음의 가치를 높게 여기는 걸까.

사실 어쩌면 그 마음은 가치가 높아지지도, 낮아지지도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던 건데.

단지 내가 곱씹어 그 마음을 알았다고 소중하게 보이는 게, 그제야 아차 하며 알아봐 주지 못한 미안함이 생기는 게 참 기분이 좋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단번에 알기는 힘들다.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단번에 알기 힘들다는 건 알기라도 한 건지, 다행히도 시간이라는 게 있고 생각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면, 쓸 말들이 생기고, 말들을 모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글을 쓸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고마운 마음이 들 때도 매번 다르지만,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비록 곱씹어야 알게 된 그 마음에 대해 글을 쓰며, 늦었지만 변명이 담긴 글을 읽어주길 바라며 글을 쓴다.

이런 마음으로, 이런 생각으로 글을 써서 인지, 받은 편지들을 보면 고마운 마음뿐이다.

글에 쓴 말들도 고맙지만, 나를 곱씹어 생각해 줘서 고마웠다.


그렇게 편지를 자주 쓰세요?


그렇게 편지를 많이 쓸 일이 생기나요?


네. 아니요.


곱씹어 보면 끝도 없고, 곱씹어봐야 끝이 없고,

곱씹어봐야 끝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제야 끝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내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야 되돌아볼 생각이 생기고,

되돌아보니 다시 또 곱씹고 있더라.

감히 그 사람의 마음을 다 안다고,

감히 그 사람의 마음이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하고,

정작 본인은 아니면서.


다른 이들은 편지를 자주 쓰는 게 좋은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좋은 모습이면서도 좋지 않은 모습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섬세한 사람이구나라고 포장될 수도 있지만,

사실 벗겨보면, 그때 하지 못한 말들과 생각하지 못한 부분과 무관심했던 내가 있다.

말랑말랑한 알맹이를 하나하나 포장하다 보니,

편지를 쓰고 있더라.


부디 편지를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닌 편지를 많이 받는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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