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봉투 위에 쓰인 글
지금은 대학원을 다닌다고, 서울에 올라와 살고 있다.
그래서 본가에는 몇 달에 한 번 정도 가는 게 다다.
최근에 할머니 생신이라 본가에 내려갔다.
20살 이전에 받은 편지들은 대부분 본가에 둬서 오랜만에 다 꺼내 읽었다.
2014,2015,2018,,,,,,
참 편지를 많이 받았다.
개수로 따지면 많은데, 편지를 써준 사람 수로 따지면 몇 명 없었다.
다 꺼내 읽어보니 한 사람한테 4,5개 정도 받았다. 내가 이렇게 한 명한테 받은 편지가 많다니....
한 사람이 써준 편지를 연도별로 나열해서 읽어보는데.
참 기분이 뭉클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고등학교 1학년때 만난 한 친구는 그때부터 내 생일 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편지를 써줬다. 직접 못주면 꼭 우편으로라도 보냈다. 이런 그 친구에 대한 고마움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 나 자신이 싫었다. 그 친구가 생일 때마다 편지를 써서 보내줬다는 걸 편지를 다 모아놓고 봐야 아는 내가 싫었다.
참 난 친구로서 별로였구나 했다.
편지를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생일 때마다 손 편지를 써서 준다는 건
우편으로까지 보낸다는 건
그 사람에게 마음이 없고선 할 수 없다 생각한다.
하물며, 집이 가까운 것도 아니고, 자주 보지도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쓴다는 건 쉽지 않다.
요즘 들어, 내 주변사람들을 보면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집에 오면 하루가 다 가고
자기 하나 돌보기 바빠 주변을 돌아볼 정신도 없고 기운도 없이 뻗어버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친구의 편지를 보니 더더욱 속이 막힌 것처럼 먹먹해졌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 친구에 대한 모르고 있었나.
내가 이 친구를 그만큼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뒤늦게 고백하지만,
사실 나와 잘 맞지 않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이 친구를 그만큼 진심으로 대하지 못했다.
내가 이 친구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이 친구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라 생각했다.
아무 말을 안 한다고 해서
표현이 적다고 해서
말이 적다고 해서
마음이 없는 게 아닌데...
이런 것들이 모여있는 편지봉투들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주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주는 마음도 중요한 거였는데
표현이 적고, 말이 없다고 해서 마음까지 없다고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친구도 똑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한 내가 참 별로고 싫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난 참 별로인 친구였어. 물론 지금도.
본가에 가서 편지를 다 읽어봤는데, 매번 생일 때마다 편지를 보냈더라. 내가 뭐라고....
사실 난 그냥 적당히 친한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해 왔어.
그냥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래서 솔직하게 대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나쁘게 대할 이유도 없으니 그냥 지냈었어.
사실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어. 이 편지들만 읽으면 먹먹해져.
모아보니 이 편지들이 너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고 있더라.
그제야 보이더라.
다 모아놓고 보니 고맙다는 말밖에 안 나왔어.
나한테 너의 마음을 나눠줘서 고마워.
나한테 너 마음을 써줘서 고마워.
어쩌면 그때는 학생이고 지금은 성인이라고 철이 들어서 이런 고마움을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감히 그런 자격이 있나 싶어.
대부분 내가 주는 편이었던 것 같은데, 이런 마음을 받아본 적이 몇 번 없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는 의문이 가득해
이 의문이 곧 마음 같아.
너 덕분에 나도 누군가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의문을 가져봤어.
항상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의문을 들게 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갖게 되니깐 이거 되게 좋은 거였네.
나도 이런 의문을 갖게 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