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은 마음을 받았구나.
편지를 자주 꺼내 읽는다. 나에겐 이 시간은 힐링과 같다.
힘든 일이 있든 없든
그냥 읽고 싶을 때마다 꺼내 읽는다.
그러다 보니 이젠 편지 봉투만 봐도 누가 쓴 편지인지 단번에 맞출 지경까지 왔다.
편지 봉투만 봐도 그 사람의 취향이 조금 보인다.
편지봉투에 아무것도 안 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꼭 똑같은 말만 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읽을 때마다 매번 마음이 다르다.
똑같은 내용을 다시 읽는 건데.
그때 읽었을 때랑 한 달 뒤에 다시 읽었을 때랑 읽고 난 뒤 생각이 다 다르다.
전에 보이지 않던 그 사람의 생각이 보여서인지, 내 기분이 달라서 다르게 느끼는 건지.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이런 과정이 좋다.
두고두고 다시 꺼내볼 수 있음에 좋다.
편지 봉투를 열기 전에 항상 설레는 마음이 먼저고,
두 번째는 벌써 감동이다. 읽지도 않았는데 감동이다.
이 말을 듣고, 한 번은 친구가 "거기에 아무것도 안 써져 있거나 이상한 말이나 관계를 끝내자는 말이 쓰여 있을 수도 있잖아 근데 열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벌써 감동이야?" 라며 말한 적이 있다.
솔직히 이상한 말이나 아무것도 안 쓴 빈 종이면 좀...... 김 빠질 것 같다.
그럼 기대감을 가지고 편지 봉투를 여는 건가…
근데 반대로 관계를 끝내자 식의 내용이나, 슬픈 내용이 담긴 거라면 오히려 김 빠진다기보단 글을 써서 줬다는 거에 고마울 것이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쌩까거나 연락을 아예 안 받으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글을 쓴 만큼 시간을 들였고, 그만큼 이것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진심이라는 뜻이니...
관계의 끝을 허투루 생각하지 않았다는 고마움과 동시에 내용을 보고는 슬픈 감정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내용이든 저런 내용이든 내용에 따라 다른 감정이 들겠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고 답했다.
아직 그런 내용의 편지는 받아보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편지봉투를 보면 설렘과 감동이 먼저이다.
편지 봉투를 열어 편지의 첫 문장을 읽다 보면 편지를 받은 그날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난 기억력이 굉장히 안 좋다. 그런데 편지를 받은 날은 뭘 먹고 뭘 입고 어떤 날이었는지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장 어제 뭐 먹었는지 한참 생각 해야 되는 사람이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그 장소로 돌아간 것 같은 마음으로 편지를 읽게 된다.
편지들을 쭉 읽다 보면 항상 마지막에 드는 생각은
‘난 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받았구나.
날 아끼는 사람이 있구나.
내 주변엔 참 다정한 사람들이 많구나.’
였다.
또 다른 하나는
편지 속 내용들 하나하나 말할 순 없지만, 어쩜 그렇게 각자 성격이 글에서 잘 드러날 수 있는지
편지 속 구절들을 보다 보면 어느 한 구절에는 그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그 사람 그 자체로 보일 때가 있다.
난 이럴 때마다 편지 속 어떤 부분보다 그 한 구절이 너무나 그 사람 같아서 더 좋았다.
편지를 쓰다가 펜을 바꿨는지 갑자기
‘아 이 볼펜이 글씨 쓰기 좀 더 좋네’
라는 구절.
편지에 그 사람 목소리가 음성인식이 되면서
‘나중에 늙어서 이웃사촌이나 하자.
내가 윗집 할게
좀 시끄러워도 봐줘’
라는 구절.
하늘만큼 우주만큼
이라는 구절.
누구보다 유치하다며 치를 떨었던 사람이었는데 편지에 있으니 그렇게 담백한 단어일 수가 없다.
평소에 친구가 말로 했으면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지고 당장 토 하는 시늉을 하며, 징그러운 물체를 보듯이 봤을 테고, 연인이라면 진짜 뭐야 라며 부끄러워했을 거다.
편지는 이런 불편함도 편함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나 보다.
어쩌면 내가 그 글을 쓴 사람에게 긍정적인 마음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콩깍지가 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헤어진 남자친구가 그렇게 써준 걸 다시 보더라도 핀잔을 주고 싶진 않을 것 같다.
그 마음이 가볍지 않고
쉽지 않음을 알기에 그런 건가.
그래서인지 좀 더 조심스럽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보면 오래 남는 거라 신중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도 이런 불편함 들은 언제나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