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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향나무 Jul 19. 2023

​각자 욕심 하나쯤은 있잖아요?

누군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것도 내 마음이 남아 있을 때 가능한 것. 

그 사람에게 어떠한 말의 형태로 다정함을 말하는 마음도

위로를 말하는 마음도

내 마음이 남아 있을 때 가능한 것.

물론 그 사람에게  따스한 말들과 위로의 말들을 전한다고 해서

내 마음이 닳는 것도, 내 마음을 뺏아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혼자 있어도 힘들지 않을 때

내 마음의 여유가 남아 있을 때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에게 다정함을 말하고 싶었던,

위로를 건네주고 싶었던,

힘을 주고 싶었던

이러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와중에 나도 사람이라고

내 마음이 힘드니 다른 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졌다.

참 아이러니하게 그 사람이 위로가 필요할 땐 내가 여유가 없어 주지 못했다.

그래서 나중에서야 깨닫고

나중에서야 그랬었구나 한다.


어느 한쪽 잘못한 사람은 없지만, 나중에서야 깨닫고 나중에서야 그랬구나 하면 마음이 좋진 않다.

왜 항상 그 순간에는 모르는 걸까.

왜 눈앞에서 없어져야 아는 척이라도 하는 걸까.

나중에서야 아는 게 아니라, 순간에 알았으면 좋겠다.

한편으론 몰랐을 수도 있지 괜찮아라고 생각한다.

그 다정함과

그 위로와

평안을

말하고 바라는 사람도 사람이니깐.

그래도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누군가는

너무 내 마음보다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한다고

왜 내 마음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더 들여다본다고

내 마음이 먼저가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근데 그럼 좀 어때

이런 거에 욕심부리면 안 되나.

그런다고 진짜 내 마음이 닳는 것도 아닌데

그런다고 진짜 전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라도 안 하면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을 텐데

그 눈곱만큼 보겠다고 눈곱만큼 알고 싶다는 게 욕심이라면 너무 작은 욕심 아닌가.


그럼 또 누군가는

가끔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해요 라고 말하겠지.

마음을 들여다보는 법을 알아야 내 마음도 들여다보고

연습을 해봐야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그저 다른 누군가의 평안을 바라고

힘듦을 알고

위로를 말하고

다정함을 말하고

이 모든 것을 '나중에서야'가 아닌 '그 순간'에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이런 욕심을 가지고 있다.


각자 욕심 하나쯤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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