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 좋아
요즘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면 복잡하다
'자칫 잘못하다가 일기가 되는 건 아닐까.'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왜 읽어야 되는 거지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 아닌가.'
'굳이?'
'글을 쓴다는 건 뭘까'
'과연 지금 쓰는 내 이야기가 남들이 읽을 만한 이야기일까
그냥 주저리주저리 하소연하는 곳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럼 일기를 쓰는 것과 뭐가 다르지
그렇게 되면 남의 일기를 왜 읽어야 되나
등등....
이런 여러 가지 고민들로 아직 글을 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글쓰기를 잠시 멈췄다.
이런 딜레마에 빠져 한동안 답을 찾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찾지 못했다.
내가 뭐라고 글을 쓴다고 했는지
내 글이 무슨 도움이 되겠다고
내 글이 무슨 힘이 있겠다고
누가 내 글을 본다고
이 생각에 빠지니 글 쓰는 즐거움을 잊었었다.
그래서 답을 찾는 걸 포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포기하니 다시 글을 쓸 용기가 생겼다.
복잡하다 생각했는데 결국 이 델레마의 과정도 참 단순했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니, 잊었던 즐거움을 다시 깨닫게 되고 꾸준함을 놓쳤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딜레마에 빠져 다른 걸 놓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꾸준함이 가장 중요한 건데 그래야 뭐가 남아도 남고 뭘 해도 해낼 텐데
자기 객관화도 필요하고 멈춤도 필요하지만 그냥 하는 것도 필요할 텐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든 되겠지 일단 하자 그냥 하자.
'그냥 하자'는 말이 간단해서 쉬워 보이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거였다.
그냥 하면 되는데.
생각보다 이 '그냥'에는 많은 생각들과 많은 걸 내려둬야 했었고 내려둘 줄 알아야 가능했었다.
한편으로는 뭘 그렇게 못 놓아서 꽉 쥐고 있었는지
그렇게 꽉 쥐고 있던 게
그렇게 놓으면 안 되는 거였는지
천년만년 쥐고만 있으면 뭐 할 건지
과연 그게 그렇게 꽉 쥐고 있을 만한 건지
그렇게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면서 왜 '그냥'에는 객관화가 빠진 건지
그냥 했어
그냥 하고 싶어서
그냥 좋아서
그냥 해봐
'그냥'이라는 말이 붙으면 왠지 모르게 책임감 없어지는 말로 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진심이 잘 느껴지는 말로 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진심이기에 책임감 없는 것 같은 그냥을 붙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진심이어서 진중한 단어를 찾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면이 존재하는 만큼 복잡할 수 있지만 그냥은 그냥이다.
좋아에는 그냥에 내포될 수 있지만, 싫어에는 그냥이 내포될 수 없다.
싫은 데는 꼭 이유가 있다. 그냥일 수가 없다.
난 네가 그냥 좋아. 한 가지로 설명하기 힘들어 그냥. 그냥 좋아.
난 네가 밥 먹을 때 쩝쩝대는 게 싫어. 말투가 싫어. 짜증을 너무 많이 내서 싫어.
싫은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아 그냥으로 줄일 수가 없지만 좋은 이유는 그냥 좋아서가 된다.
즉 '그냥'은 '싫어'보다는 '좋아'와 함께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그냥'을 어렵게 대할 이유가 없다.
결국 좋아니깐.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것에 그냥을 붙이기로 했다.
그냥 글을 쓰기로 했다.
그냥 글 쓰는 게 좋아서 쓰기로 했다.
그냥 내 생각을 나열하기로 했다.
그냥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기로 했다.
일기처럼 쓰면 어때라는 생각은 독자들을 생각하지 않는 독불장군 같은 작가이다.
어떻게 보면 에세이와 일기가 한 끗 차이일 수도 있지만,
그 한 끗 차이를 가르는 게 작가의 몫이니깐
작가의 몫에 가까워지기 위해 그냥 쓴다.
그러니 작든 크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다른 핑계와 변명과 이유 그게 뭐가 됐든 제쳐두고
그냥. 그냥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짜 내가 그냥 할 수 있게 좀 놔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