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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향나무 Mar 16. 2023

조심히 다루기로 했다.

나 사실 그녀가 슬프다고 한 말의 이유 알아.

그녀는 인생에서 인간을 세분류로 나눈다고 말했다. 하나는 가족, 하나는 남자친구. 하나는 그녀. 이 말을 들었을 땐 너무나 예상치 못한 답변이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저 그 말을 들은 직후에는 당황스러우면서 놀란 마음이 다였다.



여느 날처럼 실기실에서 새벽까지 작업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음... 이유는 모르겠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와는 다른 생각과 마음이 들었다.

하나는 그녀의 인생에서 한 분류로 넣을 만큼 나를 생각하고 있을 줄 몰랐다는 것.

또 하나는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한 분류에 속하는 인간이었구나 라는 것.

누군가에게는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로선 예상치 못한 사람이

예상치 못한 말을 내뱉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와 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대학생활 내내 같이 다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를 그저 대학교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었다. 그렇게 여긴 탓인지 4년을 봤지만, 그녀를 잘 알지 못했다. 사실 알지 못했다는 말도 맞지만, 그녀와 깊은 관계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그 후 어쩌다 대학원에 같이 오게 되면서 이런 내 생각이 깨질 만큼 그녀와 가까워졌다.

이제는 그녀에겐 그 어떤 것을 말해도 부끄럽거나 수치스럽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그녀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생각하지만, 이것과 별개로 그 사람의 인생에 속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가까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말과 자신의 인생 한 분류에 속한다는 말은 다르다. 같을 수가 없다 생각한다. 그 말은 단순히 친한 사이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로 들렸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에서 '그저 나와 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다른 이가 우릴 봤을 땐 "둘이 되게 가깝고 깊은 관계라서 그렇구나" 라며 생각하고 말 수 있겠지만,

나에겐 그녀의 말이 깊은 관계라는 말 이상으로 들렸다.

아끼고 친하다는 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저 날 착한 사람으로 봐주는구나 라고 들리지 않았다.

그 말은 '착하다', '나와 친하다', '난 그녀를 진짜 애정해', '많이 아껴' 등 그 어떤 말로 대체할 수 없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느껴지는 체감이며

말의 무게며

하나도 가벼운 것이 없었다.



그 다음은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음에 놀랐다. 나의 어떤 행동과 말이 그녀에게 그런 생각까지 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말을 듣고 난 뒤 내 어떤 것들이 그녀의 생각에 영향을 끼쳤는지 생각해봤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이런 내 마음을 전하고자 그녀에게 글을 썼다.

주저리 주저리 쓰다보니 길어졌다.

그 글에는 앞으로도 그녀 인생의 한 분류가 될 수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들이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부담감이 생겼다거나, 의무감이 든 게 아니라 그냥... 그냥 그러고 싶어졌다.

비록 그녀의 인생에 나 말고 많은 사람이 있을지 언정 그래도 남아 있고 싶었다.

최대한 오래. 그녀의 인생에 들어가 있고 싶었다.



‘그녀는 그녀를 생각하기에 이미 가득 차서 다른 사람을 생각할 공간이 없어 그러는 거뿐이야.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너무 많아 그것으로 충분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넣을 공간이 없을 뿐이야. 그러니 다른 사람 마음 보는 건 내가 할게.’ _글 중 일부분_



글을 마치고 종이를 접어 그녀의 책상 위에 두었다.

다음날 같은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먼저 강의실에 와 자리에 가방을 두고 잠시 물을 마시러 나갔을 때 마침 그녀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에서 딱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보자마자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나를 불렀다.


"그녀"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랐다.



"무슨 일 있냐"


"책상에 그 편지 뭐냐고 수업 가기 전에 실기실 들렸는데 자리에 가니깐 종이가 있길래 봤어. 진짜 뭐냐"


그 말과 눈엔 눈물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자 덩달아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니 울릴 려고 쓴 건 아닌데, 그냥 썼는데 왜... 왜... 우시는 거죠?"


"너무 슬프다고 그 글 전부 다 슬펐다"

라며 말했다.



슬프다니. 슬프다는 말에 놀랐다.

그녀가 그 글을 보고 슬퍼할 줄 몰랐다. 눈물을 흘릴 줄 몰랐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그녀에겐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마음이 울컥할 때가 대부분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슬픈 내용도 아니다. 생일편지를 쓸 때도 그랬다. 그 편지를 읽는 그녀를 볼 때도 그랬다. 기쁜 내용이든 슬픈 내용이든 생각만 하면 울컥하지 않을 때가 손에 꼽히는 것 같다.

기쁘거나 좋은 내용이며 좋아서 울컥하고, 슬프거나 우울한 내용이며 슬퍼서 울컥했다.

그 글을 쓰고 난 뒤, 그녀의 슬프다는 말을 들은 뒤, 그녀에 대한 생각이 한번 더 바뀌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예민하고 생각보다 생각이 풍부해 내가 담기엔 단순하지 않은 사람이구나. 그녀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지켜줘야겠다. 그러니 조심히 다뤄야겠다.'


 

아직 그 글을 읽고 왜 슬펐는지 이유를 듣지 못했다. 다른 일이었음 궁금해 미쳐 몇 번이고 물어보거나 혼자 머리를 싸매고 생각했을 텐데... 왜인지 난 이미 슬프다는 말에 이유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눈을 보고 내 눈에 눈물이 고였으니.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녀에게 글을 쓰면서 생각이 한번 바뀌었지만, 그녀의 답을 듣고 나니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이 한번 더 바뀌었다.

오만한 생각이지만, 그녀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것만 같아서, 그녀에게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눈물이 좋았다.



그녀를 많이 아낀다. 사실 아낀다는 마음보다 더한 마음인 것 같은데 표현할 단어가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단어를 찾는다면 내뱉을 수 있어 좋겠지만, 아마 이 단어는 평생 못 찾을 것 같다.

그저 아끼는 마음으로 그녀를 온전히 닳지 않도록 지켜주고자 한다.
















그녀 덕분에 온전히 닳지 않도록 지키는 마음에 대해 배웠어.

그녀 덕분에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졌어.

그녀 덕분에 이런 마음을 알게 되어 기뻐.


그녀에 대해 생각이 바뀐 것들이 많아.

그녀를 그녀 자체로 온전히 간직할 수 있도록 옆에서 잘 지켜줄게.

사실 어떻게 지켜야 될지, 지킬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볼게.

그저 그녀 옆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해.

그녀에게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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