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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Oct 07. 2021

점점 지쳐가는 기억들


몇 번의 가을이 지나고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길 바랐나 보다. 내 속에 뭔가가 무너지는 순간이 순식간에 찾아왔다. 평온한 일요일 오전, 집에는 딸아이와 나랑 둘만 있었다. 신랑과 아들은 각자 운동을 하러 나간 상태였다. 친정아버지가 찾아오셨다. 속으로 간이 콩알만 해지기 시작했다. 또 무슨 일일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버지란 분 역시 말이 곱게 나오시는 분이 아니다. 당신의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하면 다짜고짜 고함부터 지르시는 분이니 대화가 될 수가 없다. 사업자등록증 명의 이전 때문에 몇 번이나 전화 와서 빨리 바꿔라고 난리를 친 상태였다.



그때 당시 딸아이의 9살이었다. 조부모와의 좋은 기억이 전혀 없는 손녀! 오죽하면 외할머니는 내 딸을 보더니 " 니 이름을 자꾸 까먹는다~ 니 이름이 뭐였노??" 너무 어이가 없다. 태어난 지 9년이나 지난 손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두 번은 이해가 되지만 손녀를 볼 때마다 그러신다. 딸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나를 보고 웃는 표정은 어떤 의미인지 느껴진다.



사업자등록증 명의 이전 빨리해달라고 좋은 말로 하면 될 것을.. 앉으시자마자 고함부터 지르기 시작한다. 내 옆엔 9살 딸은 할아버지의 고함소리에 잔뜩 겁을 먹고 내 팔을 꽉 붙들고 있다. 손녀가 할아버지의 고함을 듣다가 계속 울고 있는데도 손녀가 울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이 본인 성질대로 고함은 끝고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가 걱정이 되어서 아버지께 " 내일 당장 바꿀께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손녀가 보고 있으니 고함 지르지 말고 집에 이제 가주세요" 했더니 나에게 손이 올라오려고 한다. '나이가 45살이 처묵은 게 확!'. 이건 안되겠다 싶어서 딸아이의 겉옷을 챙겨서 손을 잡고 우리 집을 나와버렸다.



골목 끝으로 도망가 버렸다.


" 왜 우리 집인데 우리가 놔아 야 되~" 딸아이가 울면서 나에게 말한다.


" 할아버지는 본인이 화가 풀릴 때까지 고함을 지르기 때문에 엄마도 듣기 싫고 OO 이에게도 더 이상 안 듣게 해주려고 그래~"


아버지가 대문 밖으로 나오신다. 아직까지 혼잣말로 고함은 계속 지르고 계신다. 안 보일 때까지 계속 숨어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와서 난리 치고 갔다고! 어떻게 울고 있는 손녀 앞에서 이럴 수가 있냐고~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또 나의 가슴을 후벼파고 만다.


"느 아빠가 그라는 거 한두 번이가~ 내는 평생 그라고 살았다. 그라고 니 딸한테만 그란거 아이다~ OO 이들(친손주들) 앞에서도 고함 많이 질렀다. 갸들은 그러려니 한다." 후............. 또 괜히 말했다.



그 후로 딸아이는 할아버지 말만 나와도 눈물이 글썽이면서 할아버지 얘기안하면 안되냐고 한다. 명절 때 가지 않았다. 나 역시 속이 만신창이가 되어있는데 거기다가 불쏘시개를 던져놓고 가신 아버지를 볼 힘도 없었다. 딸아이는 명절날만 되면 혹시나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가 싶으면 온몸이 아파지기 시작하는 증상이 생겼다. 내가 평생 겪어온 일을 내 딸은 안 겪게 하려고 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너무 지쳐가고 있었다.그 일이 있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 마음이 안정을 찾으면서 고요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꿈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이렇게 글로 다 풀어버려야겠다. 이 글도 쓸까 말까 고민을 엄청 했다. 쓰는 나도 힘들지만 굳이 이렇게 쓰고 나면 뭐가 남는 게 있을까라는 생각에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머릿속에 처박아논 기억들을 다 끄집어내서 글로 쓰면서 연기처럼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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