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겨울, 잠잠하라
12월의 라오스는, 한국처럼 춥지 않다. 건기와 우기뿐이다. 한국의 겨울처럼 매선 칼바람이 불고, 흰 눈이 날리는 계절은 없지만, '나름의 겨울'이 있다. 오늘 라오스의 밤공기는 더 서늘하게 느껴진다.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괜히 마음을 더 흔든다. 책상 위에 하얀 등이 흐릿하게 흔들린다. 내 마음에 번지는 지진 같은 진동이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맞이한다.
2025년 12월 8일 저녁 8시 42분, 지금 이 시간이 느림보 거북이 마냥 천천히 지나간다. 아침 7시부터 책상에 앉아 글을 두 편을 써놨지만, 연재는 못하겠다. 마음이 시끄러운 전쟁통인 게 글에서 티가 난다. 6.25 남북전쟁인가? 베트남 월남전쟁인가? 둘이 서로 나뉘어 각자의 날을 세워 다투기를 그치지 않는다.
종일, 일 하는 사이에도 틈틈이 글을 썼다. 휴대폰 메모장에 적고, 연필을 잡아 노트 위에 적었다. 다행히, 처음 쓴 글보다는 덜 어수선하고, 덜 어지럽다. 내 많은 생각과 교차하는 감정들이 종일 나를 앓게 했다. 마음과 머리가 온종일 전쟁이다. 껄끄러운 잡음으로 온종일 시끄럽다. 내 감정과 생각이 얹어지는 모니터 하얀 스크린 위도 잡음이 가득하다. 저녁 8시가 넘어 퇴근을 했고, 옷만 벗어 두고서 책상에 앉았다. 인간에게 가장 큰 욕구 중에 '식욕'이 하나라는데, 이 저녁엔 먹고픈 욕구마저 없다. 그저 내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뒤 켠에 틀어 둔 재즈 찬양곡에 마음을 달래 본다.
라오스의 현재 저녁의 기온은 22.4도. 추운 날씨가 아니다. 선선한 가을날의 샌님 바람처럼 불어오는데, 내 뺨을 타고 지나는 바람은 더 차갑게만 느껴진다. 창 밖으로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 자동차 엔진소리 매일 듣는 그 소리들이, 칠판 위에 날 선 칼로 긁는 소리처럼 거슬리게 꽂힌다. 마음이 온통 가시 밭이다. 나도 모르게 내 볼에 타고 흐르는 눈물이 뜨겁다. 그 덕분에 이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진 건지 모르겠다. 마음이 헛헛하게 젖은 종이 마냥 눅진해졌다. 그런 날이다.
오늘의 퇴근길은 바랜 흑백으로, 내 안의 빛을 칙칙함으로 물들어 바꾸어 버렸다. 퇴역한 군인 마냥, 세월의 무게를, 병든 몸을, 무겁게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다 버겁다. 내 마음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쓸쓸함으로 모여 흘러내리는 폭포 수의 물길처럼 느껴진다. 흐르는데 이게 맞나 싶은 길로 마음이 모여 흘러간다. 천 갈래만 갈래로 갈라지는 물길처럼, 어느 쪽으로도 서지 않는 마음의 길로 나뉘었다. 하나 되어 한 길로만 가라 하고픈데, 내 맘인데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둘 중에 하나를 던지고픈데, 던질 수도 없다. 온전히 쥘 수도 없는 그런 선택에 서 있다.
마음이 착잡하다. 눈을 돌려 내 방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지금 이 한 장면마저 낯설다. '여긴 어딘가?' '난 누구인가?' 마음 깊은 곳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아무 말도 하기 싫을 정도로 지쳐 있는데, 왜 책상에 또 앉았는지 모르겠다. 평안하고 싶고, 더 평안하고 싶은데...
눈을 감고, 찬양곡에 내 귀를 맡긴다. 조용히 나를 멈춰 세워 주는 주실 그분을 기대했을까?
'잠잠하라! 잠잠하라. 내 마음의 파동이여, 잠잠하라.'
아버지를 부르는, 그 한마디에 아니 내가 불렀나? 아버지가 나를 부르신 건지, 내가 아버지를 먼저 불렀는지 모르겠다. 그저, 들리는 건 '잠잠하라'였다.
'아버지~ 샬롬~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이렇게 마음이 요란하고, 시끄러울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숨 섞인 내 마음이 아버지께 들렸을까?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데,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나를 멈춰 세웠다.
한 편으로 더 심각해진 이유는, '일 년 중 내가 가장 기분 좋은 날은 언제인가?'를 자문자답 하다가 이렇게 되었다. 라오스에 와서 10개월을 틈 없이 일해왔다. 몸 보다 마음이 쉬질 못했다. 남들은 갤러리와 스파를 오고 가며 바쁜 나를 볼 때 체력적으로 힘들거라 예상하지만, 몸이 힘들진 않다. 마음이 힘겹다. 갈리고 갈린다.
한국 사람이 원래, 뼛속부터 갑질을 시연하는 족속으로 타고났을까? 어디서든, 모난 사람들일수록 더 그런 듯하다. 그런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다 모여 나의 하루를 힘 빠지게 한다. 간격을 줄여 보았다. '일주일 중 내가 가장 기분 좋아지는 날은?' 이 질문에 서러움이 폭발해 버렸다. 주일(안식일)이 나를 정화해 주고, 다시 새롭게 하며 다른 6일을 살 힘을 받는 날이다. 그 하루마저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눈치채 버렸다. 시간에 쫓기고, 보이지 않는 족쇄로 내 그 하루를 칙칙하게 엄습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내내 울려대는 예약 휴대폰 때문에.
더 정확하게는 이곳 내 일하는 곳의 대표의 말이었다. 되짚어 보니, 그렇다. 왜 말로 칼을 들고, 자기를 쑤시냐 물었다. 그대로 되묻고 싶었다. 그는 내게 뱉은 그 말이 무슨 뜻으로 전달되는지 알았을까? 눈치챘어야 했다.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의 행동이 그에게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보여야 하는데, 내 말과 행동이 자기를 하나님에게서 두 발자국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협박처럼 들렸다. 힘든 시기인 줄 아는데, 더 잘해보자라고 말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음이 힘들다고, 어렵게 꺼낸 그 한마디에 말이, 그렇게 되돌아왔다. 그의 말이 반대로 칼이 되어 내게 왔다. 너만 빠져나가겠다는 말이냐며 던지는 한마디. "넌 무책임하다"는 말이 참 어이가 없었다. 하나하나 자기에게 힘든 부분만을 토로하며, 내게 하는 말이 덕지덕지 내 삶에 붙어 나를 피곤하게 눌러대고 있었다. 다른 두 직원은 월급이 두 달씩 밀려있다는 그 말이, 너는 안 챙겨 주면 큰일 나니까 힘든 와중에 챙겨주었다는 그 말이 왜 생색이 되어 돌아오는 걸까? 하...
꼬리의 꼬리를 물다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번갈아 보다가 심난해져 버렸다. 난 주로 '해피의 법칙'으로 사는 사람이라 '머피의 법칙' 따윈 내 삶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류에 속한다. 그런 오늘은 온종일 "짯냐? 짰어?"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아야 할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 미소를 잃지 않으려 얼굴에 억지 표정을 지었더니 곳 경련이 일어날 듯하다. 피곤한 하루다. 지침이 내 몸 세포 하나하나에 서리는 하루다. 겨우 마음을 세워 앉은 곳이 책상 앞이다. 이렇게 글로 나를 달래 준다. 글로 뱉어 놓으면, 내 마음 안의 돋은 날 선 가시, 그것들이 풀이 죽는다. 뾰족했던 가시들이 뭉퉁거려 진다.
2025년 12월 8일, 저녁 9시 4분. 가을을 좋아하는데, 오늘 만큼은 씹어 먹어 버리고 픈그런 쌉쌀한 가을 저녁이다. 어서 이 쌉쌀한 맛을 다 먹어 해치우고 싶은, 꼴 보기 싫은 그런 맛의 저녁이다. 책상 한 편의 오늘의 말씀 달력이 눈에 들어온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구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계획에 내가 동참하기를 먼저 결단하십시오."
아~
하~
'...'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멘.
입은 다물고, 마음을 지키기로 한다. 입 밖으로 시끄러운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귀가 길까지 잘 버텨온 나를 다독여 본다.
파도 같던 마음도, 글을 쓰면 잠잠해진다. 흔들린 하루였지만, 글로 뱉는 이 시간이 나를 위로한다. 그래서 결국 글 앞에 앉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 이것이 나의 길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너의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잠언 4장 23절 구절을 곱씹어 먹는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