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기대어 사는가

통장 잔고보다 마음의 기대처

by Horang unnii

기상시간 아침 6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평일과 다르게 눈이 떠졌다.

5분만 더를 외치고 싶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눈이 또렷하게 뜨인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인형과 이부자리를 손본다.

소파 위에 슬로브를 걸치고, 앞 베란다를 열고 환기를 시킨다.

차가운 공기가 밀려오고,

밤새 침대 위에서 뛰던 내 심장을 잠시 식히고 싶어서다.


‘이 녀석 잘 뛰고 있구먼.’

‘오늘도 새 호흡을 허락하시고, 이 하루를 허락하심 감사합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털 복숭이 실내 슬리퍼를 신고 베란다에 섰다.

어둠은 물러가고, 여명이 서서히 새어 나오는 하늘이 보인다.

새벽의 시간인데, 빛은 마치 지는 해의 황혼처럼 붉스름하다.

주홍과 보라가 엉키고, 그 사이로 파란 기운이 곁들여진 묘한 빛이다.


한참을 그렇게 숨을 고르고 있는데, 옆 건물 앞 공터에 하얀 벤이 멈춰 섰다.

자동차 판매점이라 아직 출근 시간도 아닐 텐데,

괜히 눈길이 갔다.

차에서 세 사람이 내려 블랭킷을 두르고 작은 돗자리를 펼쳤다.

은색 큰 바구니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앉는다.


곧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가까운 발치에서 주황색 천을 두른 스님들이 줄지어 걸어온다.

지평선에 걸린 황혼빛과 스님의 옷 색깔이 겹쳐지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이 공기처럼 번져 온다.


잽싸게 방으로 들어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맞다, 여긴 탁발을 하는 나라였지.‘


루앙프라방이 아닌 비엔티안 한복판에서 이 장면을 마주하니

잠시 숨을 고르는 선물 같은 시간을 주어졌다.

그제야 새삼스럽게 든 생각.


‘아, 지금 나 라오스에 있지.‘


다시 방으로 들어와 물을 끓인다.

피아노 선율의 재즈풍 찬양을 틀고 책상 앞에 앉는다.

알람에 깨도 다시 잠들던 날이 많았는데,

이제는 몸이 먼저 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깨어진다는 것을.


21일.

인간이 습관을 들이기에 가장 적당하다는 시간.

짧고도 긴,

삼칠일이라 불리는 그 시간을 어찌어찌 통과했다.

매일 글을 썼다. 내면의 변화가 육체의 변화를 만들었다.

눈을 뜨기 전, 뇌가 먼저 깨어 찬양을 흥얼거리고

글감을 떠올리고, 기억들을 불러온다.


노트북을 켜기 전에 먼저 볼펜을 잡는다.

언제나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무지 메모장에 몇 글자를 흘려 적는다.


벌써 12월 17일이다.

‘며칠 안 남았구나’라는 말보다

이상하게도 2026년이 더 기다려지는 12월이다.

보통의 연말과는 다르다.

들뜨지도, 조급하지도 않다.

오히려 너무 차분해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12월 맞아?’


며칠 전 읽던 책에서 이런 질문을 만났다.


’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어디에 기대어 사는가’


성부와 성빈,

그리고 속부와 속빈을 아는가.

하나님 안에서 이미 충분하다고 믿는 부요,

부족해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선택된 가난.

반대로 많이 가졌지만 불안해서 더 쌓는 부자,

가진 것도 적고 마음도 메말라 결핍에 끌려 사는 가난.


질문은 열한 개였다.

나는 그중 세 개에만 동그라미를 쳤다.

예전의 나라면 거의 전부였을 질문들이었다.

이상했다.

상황은 하나도 나아진 게 없는데, 마음은 요동치 않았다.


2024년은 분명 가장 힘든 해였다.

사업은 무너졌고, 관계는 틀어졌고

부채와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예배만이 숨구멍이었다.

울면서도 예배 자리를 지켰다.


목사님은 말했다.

예배는 우리가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미리 준비된 은혜를 받는 자리라고.

그 말이 그때서야 이해되었다.

말씀은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삶에

등대 같은 빛이었다.


그렇게 한 해를 지나왔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알게 되었다.


‘아… 나, 마음이 자유롭구나.‘


부채는 그대로다.

삶의 무대가 한국에서 라오스로 바뀌었기 때문도 아니다.

답은 단순했다.

무엇에 기대어 살았는가.


나는 한때 사랑과 비교,

그저 ‘성공‘이라는 단어에 기대어 살았다.

보여주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샤넬 백과 벤츠가 성공의 증거라고 믿었다. 지금은 안다.

그것들은 모두 속부와 속빈의 언어였다는 것을.


12월, 이름도 모르는 한 선교사님에게 내 한 달 월급봉투를 건넸다.

여전히 갚아야 할 빚이 있고

생활비도 아껴 써야 한다.

그런데도 마음은 그 무게에 묶이지 않는다.

조바심이 사라졌다.


현실을 그대로지만,

마음은 분명히 달라졌다.

미리 걱정하지 않게 되었고,

감당할 힘이 생겼다.

말씀과 기도와 예배의 자리에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치앙마이에 한 달 살이를 가고 싶다.

중국으로 선교지를 가고 싶다.

이 모든 것들이 더 이상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를

더는 앞세우지 않는다.

하다 보니 되어 왔고,

되어 보니 이미 와 있었다.


이제 나는 대답할 수 있다.

무엇에 기대어 사는가.


통장은 넉넉하지 않다.

그러나 누구에게 손 벌리지 않는다.

배고픈 아이들에게 라면 값을 조금 보태 줄 수 있는 현금이 지갑에 있고,

끊긴 후원 앞에서 막막해진 선교사에게

한 달 월급을 건넬 마음의 여유가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부자다.


‘죽을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로마서의 이 문장을 붙들고 지나온 해였다.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이겨낼 사건을 주셨고,

기도를 배우고 싶다 했더니

말씀 가까이 갈 시간을 주셨다.


힘들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라고 말하는

나 자신이 낯설고도 반갑다.


창밖으로 해가 거침없이 떠오른다.

나도, 내 삶도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이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한다.


“오직 한 분께 기대어 삽니다.”


분명, 힘들었는데,

은혜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게 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