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보며 나는 자랐다.

by 허버지

처음 마음을 빼앗긴 것은 야구가 아니라 풍경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우리 지역에 프로야구 팀이 창단했다.
구단은 어린이 팬을 모으기 위해 어린이회원을 모집했고, 적은 돈으로도 제법 많은 혜택을 내걸었다. 첫해에는 점퍼와 가방 같은 선물도 있었고, 야구 티켓까지 따라왔다. 우리 집은 옷 한 벌 넉넉히 사 입기 어려울 만큼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그런 혜택 앞에서는 어머니의 지갑이 열리곤 했다. 지금까지도 내가 야구를 보며 살아가는 걸 생각하면, 그 시절 그 구단의 마케팅은 내게 완벽하게 성공한 셈이다.

처음부터 야구 자체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먼저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야구장의 풍경이었다. 넓고 푸른 운동장, 햇빛 아래 반짝이던 유니폼,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 속에서 승패를 겨루는 선수들. 어린 내게 그것은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구질구질하고 답답하던 일상 바깥에 정말로 존재하는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야구는 그 시절 내게 거의 유일한 취미였고, 오래 곁에 머물러준 친구 같은 존재였다.
팀이 이기면 괜히 하루가 환해졌고, 지면 어린 마음에도 세상이 조금 쓸쓸해졌다. 그렇게 나는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승패만 보이던 자리에서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 야구를 보다 보니, 처음에는 그저 멋있다고만 느꼈던 장면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승패만 보이던 자리에서 흐름이 보였고, 기록만 보이던 자리에서 의미가 보였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타자가 아웃을 당했다고 해서 그 타석이 꼭 헛된 것은 아니었다.
상대 투수의 공을 더 많이 보게 만들었을 수도 있고, 다음 타자에게 작은 힌트를 남겼을 수도 있다. 겉으로 보면 실패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다음을 위한 준비가 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야구는 원래 그런 경기였다.
아무리 뛰어난 타자라도 열 번 가운데 네 번을 치기 어렵다. 결국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타석에 나갈 수 조차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패가 없느냐가 아니라, 드물게 찾아오는 성공의 순간을 어떤 장면에서 만들어내느냐이기 때문이다.


결정구는 좋은 공이 아니라, 좋은 타이밍에 나온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어떤 투수에게나 가장 자신 있는 결정구가 있다. 하지만 진짜 실력은 그 공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지 않다. 그 공을 던져야 할 순간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처음부터 무턱대고 좋은 공만 던진다고 타자를 잡을 수는 없다. 앞선 공들로 흐름을 만들고, 상대의 타이밍을 흔들고,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무기를 꺼내야 한다.

오래 야구를 보며 나는 그게 실력이라는 걸 배웠다.
좋은 것을 하나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결국 경기를 바꾼다.

사람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는 말이 무기이고, 누군가는 성실함이 무기이고, 누군가는 끝까지 버티는 힘이 장점이다. 중요한 것은 남의 무기를 부러워하는 일이 아니라, 내게 있는 장점이 무엇인지 알고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꺼내 쓰는 일인지도 모른다.


혼자 잘한다고 이길 수는 없다는 것


야구는 또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사실도 가르쳐주었다.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들이 점수를 내주지 않으면 승리투수가 될 수 없고, 반대로 제 몫을 다했는데도 수비의 실책 하나로 실점이 기록되기도 한다. 개인의 능력은 분명 중요하지만, 결국 결과는 팀의 흐름과 누군가의 도움 속에서 만들어진다.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언제나 원하는 결과가 따라오는 것은 아니고, 때로는 주변의 응원과 도움, 함께 가는 사람들의 역할이 결과를 완성한다. 혼자만의 힘으로 버티는 삶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야구를 보며 자연스럽게 배웠다.


실패가 많은 경기라서 더 닮아 있었다


야구를 오래 보면서 내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실패에 대한 감각이었다.
실패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무엇에 약한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고, 다음을 준비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성공보다 실패의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조금 덜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드물게 찾아오는 성공의 순간이 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다.
결국 사람의 가치는 늘 성공하느냐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결정적인 순간을 어떻게 붙잡느냐에 있는지도 모른다.

야구는 내게 그런 사실을 조용히 가르쳐주었다.
계속 실패해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무너지지 않는 것이라고, 그리고 한 번의 기회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는 것이라고.


중년이 된 지금, 해설 몇 마디만으로도 흐름을 안다


나는 야구 시즌이 되면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켠다.
예전처럼 승패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핸드폰을 보면서, 글을 쓰면서,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중계를 틀어놓는다. 가끔은 화면을 보지 않고 해설만 듣는데도 지금 어떤 상황인지 대충 알 수 있다. 투수가 흔들리는지, 흐름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교체가 필요한 순간인지, 득점권 분위기인지. 오랜 시간 야구와 함께 지내다 보니 몇 마디만으로도 경기의 결이 읽히게 된 것이다.

중년이 된 지금은 사람도 조금 그렇게 보인다.
몇 마디만 나누어도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디쯤에서 자주 흔들리는지, 어떤 결의 사람인지 어렴풋이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야구를 오래 봐야 흐름이 읽히는 것처럼, 사람도 삶도 오래 겪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얼굴이 있다.


야구는 오래된 취미가 아니라 오래된 배움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답답한 현실을 견디게 해준 친구였고, 시간이 지나서는 실패와 기다림, 타이밍과 흐름을 가르쳐준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오래된 습관이 되었다.

돌아보면 야구와 나는 함께 자라왔다.
처음에는 그저 멋있어서 좋아했고, 조금 지나서는 기록을 보았고, 더 오래 지나서는 흐름과 의미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인생도 야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실패가 많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 장점을 믿고 꺼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혼자 잘한다고 끝내 이길 수는 없다는 것.

나는 오늘도 야구를 본다.
그리고 그 익숙한 흐름 속에서,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만난다.


지금 내 인생은 5회말이 끝난 뒤의 클리닝 타임 같다


나는 어느덧 중년에 접어들고 있다.
야구로 치면 5회말이 끝나고 잠시 숨을 고르는 클리닝 타임쯤 될 것이다. 앞선 이닝들을 돌아보면 잘 맞아 들어간 순간도 있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장면이 훨씬 더 많았다. 어쩌면 남은 이닝에서도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중요한 것은 몇 번을 흔들렸느냐가 아니라, 흔들린 뒤에도 경기의 흐름을 잃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조급해하지 않고, 지금까지의 경기를 천천히 돌아보며, 남은 이닝을 잘 준비하는 것. 어쩌면 중년이란 그런 시간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경기를 다 치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야구를 보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지나온 이닝을 함부로 탓하지 않고, 남아 있는 이닝을 너무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끝까지 경기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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