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끝까지 조용히 떠나셨다.

사랑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by 허버지

사랑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나의 친할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셔서 몇 장면만 희미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도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 계셨던 유일한 조부모는 친할머니뿐이었다.

할머니는 말씀이 거의 없으셨다. 주변에서는 성품이 부처님 같다고 할 정도로 인품이 좋으셨다. 우리 친가 식구들은 작은아버지 한 분을 빼고는 대체로 과묵하고 무뚝뚝한 편이었다. 손주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들 말수가 적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중에서 나는 그나마 이런저런 말을 붙이고, 다정한 편에 속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할머니는 유독 나를 예뻐하셨다.

물론 그 사랑이 흔히 떠올리는 할머니의 모습처럼 넘치게 표현되지는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신 것도 아니고, 살갑게 안아주시는 분도 아니었다. 그저 말없이 당신이 아끼시던 한과를 하나 쥐여주시거나,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챙겨주시는 정도였다. 돌아보면 할머니의 사랑은 늘 그런 식이었다. 크지 않았지만 분명했고, 조용했지만 오래 남았다.

할머니는 큰아버지 댁에서 사셨다. 집은 백 평쯤 되는 큰 집이었지만, 할머니 방은 텔레비전과 침대 하나만 겨우 들어가는 가장 작은 방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방이 제일 좋았다. 넓은 거실보다, 볕 잘 드는 마당보다, 할머니 방이 가장 편안했다. 그 작은 방에는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온기가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내가 혼자 할머니 방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들어오시더니 물으셨다.

“할머니 방은 노인네 방이라 냄새 나는데, 너는 왜 맨날 여기 있냐.”

나는 별생각 없이 말했다.

“나는 할머니 냄새가 좋아.”

그 말을 듣던 할머니 얼굴이 환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이 할머니에게 얼마나 크게 닿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누군가의 냄새를 좋다고 말해주는 일은 그 사람의 시간을, 나이를, 존재를 있는 그대로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일과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어느 방학 때, 두 달 정도 할머니 댁에 머물게 되었다. 지금 돌아봐도 그 두 달은 내 인생에서 참 소중한 시간이다. 할머니 댁은 북한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깊은 산골 마을에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이름은 물론 사정까지 다 알고 지냈고, 누가 무슨 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돕고 사는 곳이었다. 도시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인 풍경이, 그곳에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 두 달 동안의 아침은 늘 비슷했다. 잠에서 깨어 씻고 나오면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할머니는 별말 없이 내가 밥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셨다. 반찬에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올라와 있었다. 오뎅볶음, 계란, 고기 같은 것들. 말없이 차려놓으셨지만, 나는 그 밥상에 할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랑은 말을 하지 않아도 밥상 위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두 달 동안, 나는 할머니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질문을 하면 할머니가 담담히 대답해주는 방식의 대화였다.

“할머니 친한 친구는 누구 있어?”
“자식들 중에 누가 제일 예뻐?”
“우리 아빠는 어릴 때 어땠어?”
“전쟁 때 어떻게 지냈어?”

나는 그런 질문들을 던지며 처음으로 할머니라는 사람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전쟁을 겪으셨고,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자식은 일곱이나 두셨지만 하나같이 무뚝뚝해서 살갑게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재산은 일찍 큰아버지에게 다 넘겨주셔서 당신 손에 남은 것도 거의 없으셨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한 번도 서운함을 크게 내색하지 않으셨다. 자식들에게도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돌아보면 할머니의 삶은 참 많은 것을 견디며 지나온 삶이었는데, 그 긴 세월을 늘 조용히 감당해오신 것 같았다.

나는 그전까지 할머니를 그저 말없는 분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두 달 동안 알게 되었다. 할머니의 침묵은 무심함이 아니라 살아낸 사람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쉽게 하소연하지 않는 성격, 서운함을 크게 꺼내지 않는 마음, 사랑해도 요란하게 표현하지 않는 태도. 어쩌면 할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었다.

매일 그렇게 애쓰시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어느 날은 바로 앞집에 있는 허름한 중국집에서 짜장면 두 그릇과 탕수육을 시켰다. 동네에서 거의 유일하게 배달이 되는 집이었다. 내 돈으로 처음 할머니께 사드리는 음식이었다.

그날도 할머니는 별말 없이 맛있게 다 드셨다. 그리고 식사가 끝난 뒤, 아주 담담하게 한마디 하셨다.

“짜장면은 처음 먹어보는데, 맛있네.”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바로 앞집에 중국집이 있고, 자식이 일곱이나 있는데, 할머니는 그때까지 짜장면 한 그릇을 처음 드셔보셨다고 했다. 물론 살아오시며 더 좋은 음식도 드셔보셨을 것이다. 더 귀한 것도 있으셨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에는 그 말이 오래, 깊이 남았다. 짜장면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한마디 안에 할머니의 삶이 너무 많이 들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달 동안 할머니와 시간을 보낸 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평생 그러셨던 것처럼, 마지막까지도 조용히 떠나셨다.

장례를 마친 뒤 큰어머니가 나를 따로 부르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할머니 방 장롱 안에 네 결혼식 때 입으시겠다며 걸어두신 한복이 있었는데, 그건 함께 태웠다고. 그리고 냉장고에는 네가 오면 주시려고 넣어두신 옥수수와 반찬이 잔뜩 있으니 그건 가져가라고. 다른 손주들이 알면 서운할 수 있으니 말하지는 말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끝까지 아무 말 없이 사랑하고 계셨던 것이다. 말로는 한 번도 크게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내 결혼식에 입고 가실 한복을 미리 준비해두시고, 내가 오면 먹이려고 옥수수와 반찬을 남겨두셨다. 살아 계실 때는 잘 몰랐던 사랑이, 돌아가신 뒤에야 뒤늦게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 뒤로 시골 동네 어르신 한분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가 그 짜장면 사준 손자구나. 할머니가 너 밥해준다고 매일 지팡이 짚고 시장 가고 했던거 알지?”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또 한 번 무너졌다. 무뚝뚝하고 말없는 분이라고만 생각했던 할머니가, 내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하셨다니.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닌데, 나는 한때 그것을 몰랐다. 사랑은 말로 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오히려 어떤 사랑은 말보다 훨씬 더 오래 남는다는 걸, 나는 할머니를 통해 배웠다.

이제는 눈이 오는 날이면 할머니가 더 자주 생각난다. 눈 오던 날 돌아가신 할머니. 그리고 옥수수, 한복, 오뎅볶음, 짜장면 같은 것들이 문득문득 할머니를 데려온다. 사람은 떠나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그럴 때마다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은 한 계절 속에 남고, 어떤 음식 속에 남고, 어떤 냄새 속에 남는다.

나는 아마 평생 할머니를 잊지 못할 것이다.
눈 오는 날이면 더 자주 생각이 난다.
옥수수와 한복, 오뎅볶음과 짜장면 같은 사소한 것들이 어느 날 문득 할머니를 데려온다. 살아 계실 때는 몰랐던 사랑이 돌아가신 뒤에야 이렇게 크게 보인다는 것이, 나는 아직도 마음이 시리다. 무뚝뚝한 할머니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다. 할머니는 한 번도 크게 사랑을 말하지 않으셨지만, 끝까지 나를 위해 남겨두고 준비해두고 기억해두셨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말로 다 하지 못한 사랑이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은, 내 안에서 평생 할머니로 남을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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