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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 함석헌 평전] 이치석

by YT

함석헌을 처음 접한 것은 내 외삼촌 덕분이다. 갓 결혼한 외삼촌의 신혼집에 꽂혀있던 함석헌의 [뜻으로 보는 한국 역사]와 법정 스님의 [서있는 사람들]은 어린 초등학생이던 나에게 큰 호기심을 주었고, 그 후부터 지금까지 나의 철학적 호기심의 원천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외삼촌의 존재는 단순히 수학을 배우던 사제 관계를 떠나, 나의 인생 멘토로 존재했었던 것 같다. 외삼촌이 내 지적 삶을 결정했다.

아직 [뜻으로 보는 한국 역사]를 읽지는 못했지만, 사상가 함석헌을 지금에서야 책으로 만났다. 초등학교 시절에 아마 [뜻으로 보는 한국 역사]를 열어 봤는지는 모르지만, 전태일 어머니의 말처럼, 당시 한복을 입고 백발에 흰 수염을 기른 함석헌의 존재는 마치 예수처럼 기억되었는지 모르겠다. 헤즈볼라의 대표적인 리더로 이스라엘 군의 헬기 공습으로 몇 해 전에 사망한 ‘야신’이 그런 모습이었다. 그들의 외모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함석헌이 이승만 정권에 의하여 투옥되면서, 반공을 국시로 삼은 이승만은 공산주의자에 의해 투옥된 경험이 있는 함석헌을 공산주의자로 지목하기는 어려워서, ‘무정부주의자’로 지목하였다. 나는 이점에서 그들의 지목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평전에 따르면 함석헌은 국가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배격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석헌은 보통의 무정부주의자와는 달리 기독교의 바탕 위에 무정부주의를 세우고 있다. 이것이 함석헌을 이상주의자, 낭만주의 자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이 된다. 그가 말한 씨알은 민중을 말하지만, 메를로 퐁티의 생명을 포함한 듯하다. 마치 꿈틀대는 생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퀘이커 교도답게(평전에서는 교도는 아니고 회원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민중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매우 탁하게 변해 버렸다. 민중은 이런 탁함을 각성하여, 생명력을 가진 씨알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퀘이커 교도의 사람을 보는 관점이 매우 불교적이라는 부분에서 매우 놀랐다.) 함석헌의 사상은 각성에 기반한 인간 혁명의 사상인 것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국가주의의 선전이 약하고, 많은 류의 사상이 공존하던 시대라, 그의 가르침과 그의 사상이 어느 정도 지배적인 위치를 탐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의 눈에 함석헌의 사상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무정부주의자의 논거가 기독교를 만나(죄의식에 대한 각성) 그럴듯한 논리를 그에게 주고 있다. 언뜻 아나키에 경도되면서, 단순 거부를 벋어 나고자 대안을 찾으려 했었는데, 함석헌은 하늘나라, 신의 뜻, 씨알의 義에서 그 가능성을 찾은 듯하다. 평전을 읽다 보면, 함석헌이 우리 민족의 힘겨운 삶을 유대민족의 고난에 비유하는 인상을 짙게 받게 된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땅의 역사를 쫓던 유대 민족은 각성을 통해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함석헌이 설명하는 민중의 각성과 씨알로 나아감에서 매우 비슷한 결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함석헌이 다소 다른 것은 유대민족만의 길이 아니라, 우리 민족만의 길이 아니라, 그 차원을 전 세계의 씨알로 확장했다는 측면에서 그의 인터내셔널 주의가 빛난다. (282 페이지를 읽으며)

기독교도가 아닌 나는, 기독교의 바탕에서 아나키의 정서를 세울 수 없지만, 암튼 자신의 생각을 드높게 세운 함석헌이 부러울 뿐이다. 또, 그는 성서 연구회 등, 학술 단체를 조직하고, 송산 농사 학교 같은 실천적인 공동체를 조직해서 자기 사상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또, 함석헌은 이미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한다. ‘다 태워버리는 혁명이 요구되지만, 그나마 있던 보잘것없는 나의 살림마저 다 타버리기 때문이다.’(456 페이지) 그렇기 때문에 개별 인간 혁명, 개별적 각성이 해답이 되는 것이다. 터키의 성 소피아 성당의 이슬람 문양의 회 칠을 벗겨 내는 작업에 대한 논쟁이 있다. 벗겨 내어 1천 년 전 기독교의 유물을 복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벗겨지는 500년 된 이슬람의 유물도 우리에겐 소중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문재인 정부에 의해 추진되는(추진되고나 있는진 모르겠다.) 적폐 청산과 관련, 같은 아이러니가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과연 어디까지 적폐를 청산할 것인가? 박정희 시대의 유물인 것 같지만, 일제의 유물이고, 일제의 유물인 것 같지만 조선 왕조의 유물인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다고 안 할 수는 없다. 역사의식으로 각성한 사람들의 합의를 거쳐 천천히 진행해야 하는 것이 적폐 청산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와 관여하지 않을지 모르는 모든 씨알과 같이 공유되어야 하며, 씨알의 동의를 계속 끌어낼 때만 정당성이 있는 것이다. 그럼 그것은 실천적 차원에서 다수결의 동의인가? 하지만 다수결 조차 정치 논리에 더럽혀진다. 그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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