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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학사] 최영진 외

by YT

책은 신화에서 시작하지만, 신화가 정리된 것은 고려시대이므로 한국철학의 어렴풋한 시작은 신라의 화랑도에서 일 것이다. 간단하게 알려진 화랑도의 계율들이 철학의 시초가 되지만 한국 철학의 본격적인 시작은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교는 외부에서 들어온 세상을 보는 방법이지만, 중국을 통해 한국으로 전래되면서, 소승을 넘어, 대승으로 변모한다. 이것은 중국과 한국이 같다. 즉, 개인 삶의 방법론을 넘어, 주변과의 문제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고민을 주류로 삼으며 정착하게 된다. 불교의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속성은 당시 만들어지던 초창기 국가, 삼국의 국가이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당나라의 국가 이념으로 불교가 정착되었던 것과 그 궤를 같이한다.

비록 불교라는 외래 종으로 처음 철학을 세웠지만, 한국적인 특성도 자연스럽게 가미하게 되는데, 바로 호국불교적 성격이다. 삼국시대, 통일 신라 시대, 고려시대를 거치며, 근 천 년간 유명한 스님들의 국가 참여가 두드러지는 것 또한 호국불교를 설명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불교는 귀족들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스님 중에는 원효, 의상, 지눌 같은 왕가나 귀족 출신의 인물이 있고, 궁예나 신돈과 같은 스님 출신의 정치 장악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나중에 유학에서도 비슷하게 나오지만, 우리나라 철학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철학이 사변으로 그치지 않고, 신봉하는 철학을 우리의 실생활에 실제 적용하고자 하는 ‘실천성’이 한국 철학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불교는 ‘마음(心)’이 강조된다. 원효에서 시작된 마음 강조의 전통은 당연히 수양의 강조로 이어지며, 화엄의 空을 깨닫는 길로써 심의 수양이 강조되고, 깨달은 후에도, 확신을 위한 漸修가 필요하고 강조되는 것이다. 이 천년을 넘은 마음의 강조는 우리 민족의 뼛속에 깊이 자리 잡게 되는데, 나중에 유학의 심학화 경향이 그러하며, 국난의 위기 때마다, 마음의 쇄신을 강조하는 모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즉, 지금의 어려움은 마음이 탁해서 생기며, 사람들이 본마음을 회복해서 위기를 극복할 것을 주로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의 성리학 역시 중국 송대 주자학에 그 연원을 둔 철학 체계이다. 불교처럼 성리학은 외부 철학 체계의 한국적 수용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외래종의 한국화 역시 한국철학의 특징으로 삼을 수 있다.

원래 주자학은 공자 일파에 그 연원을 두고 있어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적이며, 어쩌면 정치 철학에 가까운 부분이 많았었는데, 송대에 이르러 불교와 대비되는 존재론적 우주관과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었기에 주자는 서양의 존재론과 유사한 체계를 만들게 된다. 그것이 바로 理氣論이다. 하지만 중국의 송나라는 그 수명이 짧아서 주자학이 크게 번성하지 못하고, 양명학, 고증학으로 넘어가게 되지만 조선에서는 고려 말부터 전래된 주자학을 바탕으로 굉장히 탄탄한 철학적인 체계를 피 터지게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조선의 성리학 역시, 관료층을 중심으로 연구되었기에 실천이 그 중심을 이룬다. 성리학의 이념을 실제 정치에 적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에서 소외된 퇴계 같은 이들을 중심으로 경상도 지역에서 매우 깊은 철학적 연구들이 진행되고, 그들 속에서 정치인들이 나오면서 경상도의 헤게모니가 점점 강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조선의 성리학은 사단칠정 논쟁, 호락논쟁, 심설 논쟁을 거치며, 매우 탄탄한 존재론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동시에 너무나 사변적으로 흘러간 느낌도 있다.(철학적 논의가 대부분 그렇지만) 사변과 논리 중심이 되면서 점점 현실과는 멀어져 가게 되었고, 이것이 조선 후기 외부의 영향(외세)으로 한국철학의 종말을 이야기할 만큼 큰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성리학의 역사는 고려 말 정도전 등에 의하여 국가의 건국이념으로 번성하고, 바른 군신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등 매우 번성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그 기세가 꺾이다, 숙종, 영조, 정조 대에 다시 잠시 부흥을 거치지만, 1850년대를 거치며 거의 절명의 수준으로 내달리게 된다.

조선은 성리학의 철학 체계로 이어져 온 나라라 할 수 있지만, 조선의 역사를 관통하며 불교적 DNA는 계속해서 수면 아래로 이어져 왔으며, 성리학의 위기가 도래한 1800년대부터 유/불/도가 어우러진 한국철학의 혼종이 민중을 주체로 태어나게 된다. 이 책에서는 동학(천도교), 정역, 대종교, 증산도, 원불교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너무나 그 세력이 미미하고, 약한 측면이 있다.

그럼 현재의 한국철학은 무엇일까? 조선처럼 뚜렷하게 내세울 철학은 없는 것 같다. 현재도 과거처럼 외래 산 서양철학(사회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등등)이 표면에 있는 듯하지만, 이것들 역시, 한국 고유의 유/불/도와 만나 변종으로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후대에 당대를 철학이 부재했던 시기로 구분할지도 모르겠다.

86페이지- 원효의 사상을 읽으며, 서양은 학자, 교수, 저술가가 철학자이지만, 한국은 관리 계급이 철학자이다. 즉 철학자의 현실 속 지위가 실천적/ 이론적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137페이지 – 존재론이다. 한국철학은 서양철학과 뭐가 다르고, 왜 철학이 다양한 발전을 못했을까? 이기론과 그에 파생된 논의를 보면 한국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인다.

281 페이지 – 조선의 성리학이 심학화 된 이유. 책에서는 환경에 따른 실천성의 강화 때문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엔 조선 유교 사회의 기저를 흐르던 불교적인 요소가 무의식 중에 심학의 강화로 이어졌을 수 있다. 선비들이 그렇게 벋어나려 했지만,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자가 이기론의 존재론을 만든 것은 불교의 존재론에 대항하는 거시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천이 강조되는 성리학 체계에서 존재론은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조선의 성리학에서는 이 존재론을 가지고 수많은 논쟁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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