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바바의 탈식민적 정체성] 데이비드 허다트
오랜만에 독서 내공을 테스트하는 책을 만났다. 익숙하지 않은 현대 철학이라, 호미바바의 저작이 아닌, 그에 대한 요약/해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현대 미술을 대하는 것처럼 난해하다. 결국 마지막 두 개 챕터를 남기고, 읽기를 포기하였다. 나로서는 매우 흥미를 끄는 주장이었기에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현대철학이 후기 - , 탈 - , 포스트 -의 접두사를 달지만 호미바바의 경우는 post라고 붙이는 것이 더 정당할 것 같다. 식민적 정체성을 벋어 났다고 설명하기보다는, 식민적 정체성 분석의 연속된 연장선 상의 뒤쪽에 위치한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기 때문이다.
호미바바에게 정체성은 늘 도전받는 위기의 개념이다. 정체성의 사회적인 결집이라 얘기할 수 있는 문화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볼 수 있다. 식민지 지배 계층은 정치적으로 피 식민지배 층과는 구별되는 정치적인 활동들을 하며, 자신들의 우월성의 core(정체성)를 만들어가지만, 그들의 우월성의 코어는 흉내 내기 등의 도전 활동을 통해 지배자의 정체성은 계속 도전받는 불안한 상태에 있게 된다. 이 불안은 드러내 놓은 불안이라기보다는 정신분석학적인 차원에서 설명되는 기저에 깔린 무의식,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체성의 불안은 문화로 확장되면서, 바바가 표현하는 미끄러짐의 이탈을 경험하게 되고, 이 미끄러짐은 바바의 탁월한 개념인 ‘혼종성’을 낳게 된다. 바바의 혼종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형성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이때 헤겔에 의해 명명되어 傳家의 寶刀처럼 쓰이던 변증법은 폐기된다. 혼종성은 다른 두 문화 사이의 불명확한 경계를 이루는 ‘안개 강’과 같은 것이다. 정-반-합의 합은 없으며, 두 곳 사이에 짙은 띠를 만들며, 두 쪽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혼돈의 강이 되는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여기서 철학 이론의 미학적 아름다움을 본다.
우리가 흔히 유라시아 대륙의 끝에서부터, 중국 문화-동남아 문화-중앙아시아 문화-페르시아 문화-아랍문화-유럽 문화라고 마치 각각의 문명마다 분명한 정체성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그 문화의 변방에서는 타 문화와의 경계는 무뎌지며, 마치 경계 자체가 문화인 듯 되어 버리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즉 각각은 각각에 대해 영향을 미치며 혼합되어 혼종으로 가는 중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바바의 민족에 대한 과소평가는 정당한 것이 된다.
한편, 바바를 읽다 보면 나 스스로 '인도성'이라 명명한 특징을 만난다. 바바의 철학은 정신분석학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벡터의 방향은 내부로 향할 수밖에 없으며, 탄탄한 논리로 내부로 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상하게(?) 역전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표현하는 ‘인도성’이다. 바바 주장의 아주 핵심인 식민 지배계층의 내면에 불안이 생긴다는 부분은 어느 순간 상황이 역전되는 매우 인도적인 발상으로, 간디의 무저항 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