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소설, 오랜만에 접하는 장르라 너무나 생소했다. 이것을 계속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독서 내내 들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종잡을 수 없다. 고증을 통한 사실 위주로 구성되는 평전과는 매우 다르다. 제인이 실존인물인지, 한국인 출신 입양아인지, 그녀가 에곤 쉴레의 연구가 중 하나인지, 또 쉴레가 당시에 느꼈던 감정이 맞는 것인지? 물론 어느 정도 사실에 바탕을 두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종잡을 수 없어서 과연 에곤 쉴레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지금도 의심이 든다.
에곤 쉴레를 미술산업 측면에서 보자. 그가 활동하던 1900년 초반은 귀족들이 몰락하고 부르주아들이 태동하던 시기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는 그 시기가 오스트리아보다 50-80년 정도 앞서지만, 오스트리아/빈의 상황에서는 20세기 초가 바로 본격적인 부르주아가 만들어지던 시기이다. 빈 미술 아카데미로 대변되는 기존 미술과는 다른, 클림트로 대표되는 분리파가 부흥하던 시기, 그 시기에 에곤 쉴레는 거기에 있었다. 매우 개성적인 감정이 뚝뚝 묻어나는 그의 그림에 부르주아는 서서히 매료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선정적인 요소는 부르주아들 사이에서 은밀한 열광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에곤 쉴레는 초상화를 주로 그린 화가다. 즉 판매용이다.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그는 매우 기초가 탄탄한 화가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며, 마치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죽어버릴 것 같은 사람, 그가 바로 에곤 쉴레이다. 그의 초상화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잘 그려진 초상화는 아니다. 뭔가 괴기스럽기 조차 하다. 발리(여자 친구)의 특별한 포즈와 초상화의 특별한 구도(위에서 바라보는 구도, 2명을 등장시키는 초상화), 은유적인 표현들…, 그의 초상화는 기존의 초상화와는 완전히 그 궤를 달리한다. 그래서 매우 현대적이다.
자화상은 그가 가장 많이 그린 장르이면서, 또 그의 가장 큰 특징을 담고 있다. 이것을 그의 자기 정체성의 탐구나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 등으로 미화하는 것은 좀 오버인 듯하다. 내가 볼 때 그는 기존의 형태, 정형화된 구도에 반하여 다름을 추구했던 화가인 것 같다. 자화상 역시 초상화의 특별함을 바라보는 형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가난한 미술가에게 자화상은 가장 많이 시도해 보게 되는 장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에곤 쉴레의 풍경화에 마음이 간다. 매우 현대적인 느낌을 주며, 박수근이 영향을 받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네 그루의 나무’, '빨래가 널려있는 마을’, '나무 한그루’는 마음속에 고요와 편안함을 준다. 그의 풍경화에는 표현주의적인 개인의 감성이 묻어난다.
그의 초상화는 귀족과는 다른 개성 강한 부르주아의 취향을 반영한다. 하지만 1900년 초는 귀족의 흉내를 내고 싶은 부르주아의 시대다. 그는 서서히 알려지면서 짧은 말년에 빛을 보다, 나치에 의해 절멸한다. 퇴폐화가로 낙인찍히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잠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의 사후 백 년이 지나 그는 우리에게 다시 다가온다. 개성 강한 그의 작품이 현대의 개인주의적인 성향과 맞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의 자화상, 초창기 자화상의 괴기함, 그의 혼란과 억압과 고통을 반영하고 있다. 늘 보아오던 자화상이 아니라, 생소한 포즈를 만들고 구성을 극적으로 가져가는 그만의 개성이 넘치는 자화상, 특이한 초상화의 포즈는 매우 파격적이다. 나는 이곳에서 그의 미 의식을 본다. 아름다움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구성해 낼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가 에곤 쉴레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에곤 쉴레는 오해받기 딱 좋은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