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사고 싶었던 이유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태극기 집회에서의 기독교의 모습, 그리고 최태민의 십자군과 구국봉사단, 또 세월호와 관련한 구원파 얘기 등이 직접적인 행동의 계기가 되었지만, 가끔씩 등장하는 종말론 기사와 광적인 모습, 종교인 과세에 대한 저항 등이 왜 그럴까?라는 의구심을 키웠고, 밤의 도시 옥상에서 빛나는 수많은 네온 십자가는 구원의 빛이 아니라, 나에게 답답함을 선물했기에 이 책을 읽어볼 생각이 들었다.
[한국기독교의 역사] 3권을 따라가 보면, 해방 이후 이승만 등 많은 수의 정치인들이 기독교인들이었고, 가장 큰 것은 미군정에서 기독교를 팍팍 밀어주었다는 것이다. 미군정은 일제의 적산 불하 등 기독교의 확장에 경제적인 지원의 큰 몫을 담당한 것이다. 또 이승만은 지금도 존재하는 군목제도를 군대 내에 심음으로써, 기독교가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단순히 해방의 혼란과 6.25등의 비참한 상황 속에서 한국인들이 기댈 곳이 하나님밖에 없었다고, 쉽게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만약 한국 정치인들과 미군정의 정치적, 경제적 지원이 없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미국 등 외국의 선교사들의 역할이 지배적이다. 우리는 선교사를 개인으로 볼 수 없고, 그들의 뒤에는 미국의 교단이라는 거대한 물주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비록 해방되고, 전쟁은 끝났지만, 마치 세계적인 교단의 정복 전쟁이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각 교단에서, 또 그 각 교단의 부분적인 지부에서, 혹은 단독 교회에서 우리나라에 돈을 공습했으며, 이 공습과 더불어 기독교라는 전단도 뿌려지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이러한 공습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는 이런 과정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여, 지금은 우리나라 최대의 종교로 전체 인구의 약 30%를 기독교인들로 만들었다. 이 수치는 중국과 일본에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은 비율을 형성한다.
즉, 기독교에는 돈이 있었기 때문에, 또 그 돈은 정치인들에 의해 비호되었기 때문에 1950년대와 70년대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장사하면서, 그들만의 독자적인 방법들을 고안해 낸다. 이것이 한국 기독교와 토속 민간 신앙이 만나는 시점이고, 사이비들이 탄생하게 되는 지점이다. 박수를 치고 열정적으로 행해지는 의례와 방언 및 간증 같은 우리나라 특유의 기독교 의식들이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분파는 교리적인 측면이라기보다는 기독교인들의 자기 이익과 관계하는 것이 많다.
한국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역사는 제국주의 진출의 역사다. 종교적인 침략이 한반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과정은 마치 근대 말, 제국주의 국가들의 미개발 국가로의 진출과 그 형태가 똑같다.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오순절 교회 등 이미 완성될 대로 완성된 세계적인 개신교 분파들에게 광복과 625를 지나온 피폐한 한국은 정말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맛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돈을 앞세웠고, 미군정과 그 이후엔 기독교 정치인들의 후원으로 그 교세를 빠르게 확장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박정희의 독재와 신군부의 폭압은 기독교도가 활동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주었다. 간간히 기독교 발 사회참여와 민주화의 전진이 있었지만, 기독교의 주류를 차지하던 보수 기독교인들은 우리의 현실에 눈과 귀를 막아버렸다. 그리고 기껏 개인적인 구원만을 설교하였던 것이다. 이런 기독교의 극우적인 보수성이, 현대 젊은이들의 시각과 차이를 빚어내면서 최근에는 기독교도들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신자 수의 감소는 아마도 과거 기독교도들이 해왔던 행동에 그 문제의 원인성이 내포되어 있다.
기독교의 현대사를 읽으면서, 나는 기독교의 현대사는 우리 민족의 현대사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민족의 질곡의 기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적폐라면 매우 근원적인 적폐인 것이다. 시간을 가지고 적어도 두 세대는 열심히 노력해야 씻을 수 있는 허물 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