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여행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글렌코다. 이곳의 비극적인 역사와는 별개로 글렌코 협곡과 산, 산을 타고 내리는 물이 만들어낸 울퉁불퉁한 근육의 비탈은 탄성을 만들어내고, 이끼가 낀 듯 초록의 풀들과 그들의 배후를 장식하는 흰구름, 그리고 가끔씩 그 대비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은 모든 사람들을 탐미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장엄한 광경에서 18세기-19세기의 터너와 컨버터블로 대표하는 영국 풍경화의 전통이 내려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접한 컨버터블의 그림엔 왼쪽 캔버스를 대각선으로 가르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실제로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개는 스코틀랜드에서는 무지개를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나의 마음을 끈 것은 영화에서 보던 중세 도시의 음울함을 에든버러에서 상상할 수 있었단 것이다. 개인적으로 호러 장르를 좋아하지 않기에, 또 가성비를 고려했을 때 지하도시와 queen mary close를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습기와 오래된 먼지가 만들어낸 건물의 외벽을 변형시키는 검은 때는 영화에서 본 중세의 모습을 충분히 상상하게 만들었다. 중세의 남성적인 고집과 거침을 에든버러 도시를 산책하며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무지와 관심사에서 출발한다. ‘왜 스코틀랜드는 영국에서 독립하려 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난 그 이유를 이번 여행에서 알 수 있었고, 왜 이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스코틀랜드는 역사적으로 잉글랜드와는 다른 민족에서 출발한다. 스코틀랜드는 아일랜드에서 넘어온 스콧 족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즉 민족의 기원이 아예 다른 것이다. 또, 로마는 잉글랜드를 점령한 후 북방 이민족(스코틀랜드인)을 방어하기 위하여 토끼의 목 부분에 ‘하드리아누스 장벽’을 만들었다. 장벽의 존재 역시 오랫동안 그들을 물과 가름으로 분리하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사건과 기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스코틀랜드 독립의 열정을 지피게 하는데, 그것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 억압과 저항의 긴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초기 저항의 단계에서 있었던 잉글랜드에 의한 학살이 독립의 열정을 묶었다. 특히 잉글랜드 역시 비슷한 구조인지는 모르지만, 스코틀랜드는 Glan이라는 씨족들의 연합체로 학살의 기억은 가족에 대한 살해로 기억이 상대적으로 길어지며 증폭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또 그 씨족 가문이 유력한 가문이라면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글렌코에서의 맥도널드 가문의 학살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큰 것이다. 또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의 전통복장인 KILT의 착용을 금지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거의 우리로 치면 일제의 단발령에 버금가는 조치로 생각된다. 또, 스코틀랜드의 언어 – 게일어 - 는 사용이 제한되기도 하였다.
다른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게 생각건대 상기의 이유로 스코틀랜드인의 저항정신은 그들의 DNA를 타고 계속 내려왔으며, 오늘날에도 독립은 스코틀랜드의 중요한 이슈이며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되는 것이다. 에든버러 및 스코틀랜드 곳곳에 보이는 파랑과 하얀 스코틀랜드의 깃발이 그러하고, 가이드들마다 차려입은 전통복장이 보여주기 식이 아닌, 그들의 저항정신이 면면히, 옹골차게 내려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저항의 정신은 1차 대전 후 영국의 몰락 과정을 겪으며, 최근의 브렉시트 및 중앙정부의 실정 등으로 저항의 유전자는 독립이라는 활화산 폭발의 매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스페인 카탈루니야 지방의 독립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은 ‘노령화’이다. 맥도널드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할아버지, 막스 엔 스펜서의 90%가 넘는 계산원 할머니들, 공원 곳곳에서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대중 버스를 타는 할머니들, 미술관 안의 곱게 늙은 할머니들…., 스코틀랜드는 할머니들의 나라다. 마치 우리의 미래를 보는 듯한 충격에 빠져든다. 호텔에 켜 놓은 TV에는 뉴스 진행자 역시 할머니이며, 날씨도 할머니가 알려주며, 대담프로에도 할머니가 많으며, 총리도 곱게 늙으신 할머니다. 노인이 차지하는 정권은 당연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노인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 노인들의 아들과 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 역시 비슷한 장면이 탄핵기간에 벌어졌지만, 이제는 지역 간 격차, 빈부 간 격차보다는 세대 간의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를지 모르겠다. 세대 간의 문제는 이제 우리도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인 문제가 되어가는 것이다. 노인복지 향상은 지금은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향후엔 문제가 될 것이고, 세대 간의 갈등은 독립보다 더 강하게 스코틀랜드를 쑤셔 넣을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