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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차이가 있을까?

[도덕의 계보학] 읽기 전과 후

by YT

[도덕의 계보학]을 읽기 前

그동안의 사전 지식으로 통찰한다. 니체가 말한 ‘노예 도덕’은 지배자들이 만들어낸 도덕이다. 니체에 의해 ‘노예 도덕’의 생산자가 된 기독교는 초기를 제외하고는 늘 지배세력의 곁에 있었고, 그 자체가 저항할 수 없는 지배 체계이다. 초기 기독교 역시 지배세력이 되기 위한 투쟁의 시기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대중을 열광시키는 축구의 탄생과 80년의 프로야구의 시작처럼, 기독교 및 노예 도덕 역시 지배자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임은 이제 누구나 알지만,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되었는가 하는 비밀의 단초가 니체의 ‘노예 도덕’에서 나올 수 있을까? 즉 기독교는 노예 도덕을 생산해 냄으로써, 궁극적으로 지배자를 돕는 이데올로기가 된 것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신부 세르게이]에서 세르게이는 자신의 약혼녀가 짜르의 정부임을 알고, 짜르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 신부가 되기로 한다.(책에서는 ‘이 결정은 매우 당연한 결론의 귀결인데,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기독교는, 즉 노예 도덕은 짜르보다 높은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리의 정신 속에서…, 아마도 세르게이의 이런 결정을 짜르는 비웃고 있을지 모른다.


[도덕의 계보학] 읽기를 마치고

마치 시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문장 하나하나, 단락 하나하나의 울림이 커서 빨리 읽어갈 수 없었다. 내용의 특이함, 독특함도 있지만 니체의 문장 자체가 감정을 토하듯 하기 때문에 너무나 꽉 찬 밀도로 식도를 꾸역꾸역 타고 넘는 눌러 뭉쳐진 식빵을 연상시킨다.

그리 길지 않은 논문이기 때문에 자세하지 못하기 때문에 옮긴이의 말처럼 후대에 [도덕의 계보학]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으며, 상반된 해석의 결과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서양철학사에서 비주류로서 주류 전통과는 반대에 존재하면서, 온갖 비난과 멸시를 받았지만, 현대에 와서 니체의 ‘힘에의 의지’, 전진을 위한 원초적인 에너지로 인식되어, 많은 학자들이 그를 사부로 모시는 것 같다. 즉 니체의 핵심 개념 ‘힘에의 의지’는 중립적인 개념으로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있게 하는 자동차의 엔진에 비유될 수 있을 것 같다. 무언가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으로…,

하지만, 철학사에서 니체의 위치가 합리성의 ‘反’으로 존재한다면, 결국은 ‘合’으로 가는 과정에 니체가 있는지 모른다. 현대는 합리성이 쌓아 올린 거대한 성이고, 궁극적으로 이 오래된 성을 허물고, 새로운 것을 지으려면 니체가 그 성을 허무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니체는 단지 과정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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