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아랍지역의 전쟁(이라크 전쟁, 시리아 전쟁)을 보도할 때면, 우리 언론에 의해 자주 조명되었던 것이 순니와 시아, 즉 이슬람 종파 간 대립이었다. 미국의 이권과 그것에 대응하는 다른 패권국(러시아, 유렵 등)들 간의 이해보다는 단순히 이슬람 종파 분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어느 정도 존재하는 두 분파 간 역사적인 감정을 고려하더라도, 너무나 편협한 서구 중심의 관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순니와 시아는 모두 알라를 믿으며, 공통의 경전인 꾸란과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에 준하여 살아가는 ‘같은 무슬림’이다. 구분과 분쟁의 조장은 국제 정치 질서 속에서, 또 그것을 반영한 아랍의 정치 지도자들 간의 부응과 반목에 의한 것일 뿐이다.
그럼 앞에서 설명한 두 분파 간 역사적인 감정은 무엇일까? 순니와 시아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거슬러 선지자 무함마드 사후로 가야 한다. 무함마드 사후, 움마(이슬람 공동체)에서 순나(관행)대로 칼리프(이슬람의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였다. 그리고 당시 1대 칼리프로 선지자 무함마드의 친구이며, 파트너인 아부 바크르가 선출되었고, 그 이후 2대(오마르), 3대(우스만)이 선출되었다. 문제는 4대 칼리프로 선출된 알리다. 알리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조카이면서, 사위이기도 했는데, 여기에서 순니파와 시아파의 구분이 등장한다.
시아파(분파라는 뜻)에서는 선지자 무함마드 혈통의 중요성을 부각하여 알리에서부터 알리의 아들로 이어지는 혈통에 근거한 칼리프 라인을 주장했다. 하지만 순니파는 그동안의 관행대로 움마의 결정에 의하여 칼리프를 선출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볼 때, 오늘날에도, 또 과거의 우리나라, 그리고 세계사 속에서도 흔하게 벌어지는 정치 투쟁의 모습일 뿐 특별한 것은 없다. 알리의 사후 이러한 순니와 시아의 주장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데, 당시 시리아 쪽에서 부흥한 군벌 우마이야는 순니의 전통에 따라 자신이 칼리프임을 선포하였고, 알리에 이어 알리의 아들 하산과 후세인을 내세우고자 했던 시아파와 대립하게 되며, 이슬람 권은 내전으로 치닺게된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세워진 우마이야 왕조는 현재 이라크의 카라발라에서 전쟁을 통해 시아파를 패퇴시키고, 알리의 둘째 아들 후세인을 무참하게 살해한다. 여기에서부터 순니와 시아의 앙금이 시작되는 것이다. 전쟁에서 패한 후, 시아파는 페르시아, 현재의 이란 지역으로 그 영향권이 줄어들었고, 그들만의 선지자 체계를 만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12 이맘이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시아파를 12 이맘파라고도 하는 것이다. 순니파에서 이맘은 단순히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 정도의 의미가 있지만, 시아파에서의 이맘은 종교의 최고 지도자 자리를 차지한다. 우리가 아는 호메니옹은 이란에서는 ‘이맘 호메이니’이고 현재 이란 최고의 종교 지도자는 ‘이맘 하메네이’로 호칭된다. 12 이맘에서 1대 이맘은 4대 칼리프인 알리가 되고, 2대는 그의 큰 아들인 하산, 3대는 작은 아들인 ‘이맘 후세인’이다.
이맘 후세인은 그 처참한 죽음으로 인해 시아파 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이맘 중 하나다. 이란을 여행하다 보면 상점 혹은 관공서에 3개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맘 후세인, 이맘 호메이니, 이맘 하메네이의 사진을 거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이맘 후세인의 그림엔 항상 눈 아래쪽에 칼로 베어진 피가 흐르는 상처가 있는데, 이것은 카라발라 전투에서 우마이야에 의해 살해된 이맘 후세인에 대한 상징이다.
이란 머술레 고속버스 매표소 내부 사진 - 왼쪽부터 이맘 후세인, 현 종교지도자 하메네이, 호메이니(2003)
언뜻 피의 혈통을 중시하는 시아파에 비해, 순니파의 칼리프 선출이 매우 민주적이고 합당한 듯 보이지만, 분파가 생성될 당시는 AD 700년경 임을 잊지 말자. 당시 다른 모든 지역은 봉건제 사회였었다. 그리고 우마이야, 그 후 바그다드에서 융기한 압바스 왕조와 같이 실질적인 힘을 행사하는 사람에 의해 순나가 조작되고, 억압되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슬람의 역사에서 칼리프는 명목으로만 존재하고, 실질적인 힘은 왕, 술탄, 혹은 아미르라고 불리는 최고 정치지도자에게 실권이 있었던 기간이 훨씬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