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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by YT

아! 파우스트 – 뭔 쓸 말이 없다. 최고의 고전…., 노력하는 인생, 만족하지 못하는 사내의 끊임없는 노력, 그것이 구원의 덕목이 되었다. 그간의 악행은 무시되었다. 과연 과정과 관계없이 노력 자체 만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현대의 관점에서는 아니다.

그레첸의 상황이 딱하다. 마음 깊이 매우 동정했다. 두 번에 걸친 발푸르기스 축제는 현대의 판타지 영화인 듯하다. 정령과 마술사, 마녀 들의 축제…,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 그리스 신화와 성경을 버무린 괴테의 지적 향연은 너무나 지나쳐 아니꼽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헬레나를 끄집어내어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떠나보내는 대목은 그 상상력의 탁월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 사랑 또한 그것의 결과물(자식)로 인하여 좌절하고, 간척 사업 같은 공공성에 그는 ‘멈추어라! 너무나 아름답구나’라며 그의 만족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 역시도 데미스토펠레스의 오해가 있었다. 파우스트는 완성된 후에, 이렇게 말하려 했는데…, 악마는 그를 죽여버린다. 파우스트는 가정법을 쓴 것인데, 악마는 오해를 한 것이다. 그는 오해 때문에 구원되었다.

암튼 비평가들은 파우스트의 삶에 만족, 궁극의 가치가 공공성에 있다고 논평한다. 하지만 개인의 삶의 가치가 공공성에 있을까? 정부일을 여러 해 도모했던 괴테 입장에서는 궁극의 목적으로 치부될 수 있지만, 현대의 우리에게는 어림없는 소리인 것이다. 어쩌면 그레첸과의 사랑이 더 가치 있는 궁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파우스트를 읽는 내내, 희곡이라기보다 서사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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