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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와 조르바

by YT

난 두 인물이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뫼르소가 아무것도 하지 않음/ 인간 자유의 출발선에 있다면, 조르바는 무한 행위와 긍정의 극단에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인간의 자유를 대표하는 소설이고,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은 실존주의의 대표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실존주의에서 인간의 실존은 자유에 있다는 면에서 조르바와 같은 층을 공유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뫼르소의 자유는 멈춰있는, 미발현의, 가능성 같은 자유지만, 조르바의 자유는 밖으로 표현되는 춤과 같은 자유, 날고 싶은 자유라는 생각이 든다. 뫼르소와 조르바는 비슷한 시기, 1900년대 초반의 비슷한 시대에 살면서 비슷한 이데올로기를 체화한 인물들이다. 장소도 지중해라는 측면에서 유사하다.(뫼르소는 알제에 조르바는 크레타에 산다.)

[이방인]을 설명하는 부조리는 이중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뫼르소의 심리 상태의 부조리, 즉 인과율이 부족한(어쩌면 인과율이 철저한) 개인 심리적 측면의 부조리와, 뫼르소의 살인을 어머니 장례식과 연결시키는 사회의 부조리, 즉 개인 차원의 부조리와 사회 차원의 부조리 두 의미가 있다. [이방인]에서의 이 부조리에 대한 의식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통과한 지금에선, 다소 올드패션인 것도 사실이다.

바로 이 부분이 고전에서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없음과 지루함의 원인이 되는지 모르겠다. 평론가들이 추천한, 사람들이 추천하는 고전은 당시에는 대단히 파격적인 것이지만, 지금 나의 시대에는 올드패션이 되어버린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유명한 고전 작품일수록 그러하다. 그럼 우리는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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