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적지는 텅 비어있다

by YT

아랍과 터키 지역으로의 여행은 주로 테마에 따라 과거 로마의 유적지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 장거리 단체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먼지 날리는 폐허와 텅 빈 공간뿐이다. 허리를 굽히고 기어가다시피 들어간 피라미드 속엔 꿉꿉하고 눅눅한 곰팡이 냄새만 풍겨올 뿐 아무것도 없다. 이스탄불에서 큰 설렘을 안고 도착한 트로이에는 먼지 날리는 폐허의 잔해와 그곳의 곳곳에 세워진 몇 번째 트로이라는 팻말과 설명뿐이다. 그나마 매표소 앞,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트로이 목마가 관광객의 허무함을 조금 달래줄 뿐이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터에는 복원되었다기보다는 현대식으로 재현된 커다란 기둥 하나만 세워져 있을 뿐이다.(고대에는 127개의 기둥이 있었다)

유적지 관광은 보통 이런 식이다. 폐허에서 폐허로, 그냥 껍데기만 혹은 껍데기의 폐허만 보고 돌아오는 것이 대부분의 유적지 관광이다. 그럼 그 많은 내용물은 어디에 있을까? 대부분의 커다란 유적지는 그 장소와 멀지 않은 곳에, 혹은 대도시의 박물관에 출토품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그래서 보통 유적지는 박물관 관광과 짝을 이루어 진행되어야 한다. 피라미드 속 온갖 부장품과 아름다운 관을 보려면, 카이로 시내에 있는 이집션 박물관에 들러야 한다. 어쩌면 이집션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이 피라미드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리스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내용물을 보려면, 그 옆에 현대식으로 새롭게 지어진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꼭 가야 한다. 이렇게 유적지와 박물관이 만나야 비로소 온전한 그 유적의 역사가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서양에 의한 문화재의 약탈과 반출이다. 사실 우리는 영국 국립 박물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더 많은 파라오의 미이라와 관을 볼 수 있고, 아크로폴리스 보다 더 많은 신들을 만날 수 있다. 로제타 스톤은 나폴레옹의 손에서, 다시 빼앗겨 현재는 영국 국립박물관을 대표하는 전시물이 되어있고, 아크로 폴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 위 부조는 ‘엘긴마블’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런던에 가야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의 부조는 모두 뭉그러졌거나 파괴된 下品들만 전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독일 베를린에 가면 고대 페르가몬 왕국의 실물 제우스 제단이 완벽하게 옮겨져 전시되어있다. 터키의 폐허 유적지 박물관에서 보는 그리스의 신, 로마 황제 그리고 위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수많은 돌 몸통의 머리는 영국 국립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다. 그 많던 목 잘린 조각들의 머리는 몸과 떨어져 모두 런던과 파리에 있는 것이다.

약탈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관리 차원에서라도 출토품은 유적지와는 분리되어 따로 보관/전시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폐허 속에서 유물은 수습되어야 하고, 후대를 위하여 잘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폐허의 방문이 피할 수 없고, 어느 정도 가치 있는 일이라면, 좋은 관광객인 우리는 ‘관광을 위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사전에 유적지에 대한 많은 정보를 공부한 우리는, 가이드의 세세한 설명을 덧붙여 머릿속에서 그때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다. 폐허 위에 우뚝 서 두 팔을 펼치고 눈을 감으면, 저 바닷가 쪽에서 아킬레우스의 창이 헥토르를 향해 날아올 것이고, 그리고 저쪽 트로이 성에서는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오고, 파리스의 품에 안겨 떨고 있는 아름다운 헬레네의 눈물이 보일 것이다. 그때 펼쳐진 두 팔 사이로 지중해의 바람이 불 것이고, 트로이 전쟁은 봄바람 날리던 어느 화창한 날, 이곳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진화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