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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아르메니아인

by YT

시리아, 레바논, 이란을 여행하다 보면 이슬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레바논 제외, 레바논은 마론파 기독교도와 이슬람이 권력을 분점하고 있어 이슬람 국가로 단정하기 어려운 국가), 아잔이 아니라 예배의 종소리를 울리는 교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 교회의 상당수는 끝이 부채꼴처럼 넓은 십자가를 쓰는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교회들이다. 이슬람의 한가운데서 이슬람과 대립하지 않고, 공동체를 이루어 자신들만의 신앙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중동에 있는 아르메니아 인들이다.

이들 나라의 유명한 유적들 중에는 꼭 오래된 아르메니아 교회가 하나, 둘쯤 포함된다. 왜 이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남쪽으로 혹은 서쪽으로 이주하게 되었을까? 이란의 이스파한에 있는 Vank Cathedral(아르메니아 정교회 교회)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파비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이스파한의 ‘졸파’ 구역은, 과거 사파비 왕조 때 이주한 아르메니아 인들이 모여 산다. 사파비 왕조의 ‘샤 압바스’는 금속 세공과 손재주가 뛰어난 아르메니아 인들을 이스파한으로 불러들여 궁전과 건물을 짓게 했다고 한다. 아직도 이스파한엔 약 7천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Vank Cathedral입구와 벽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으며 안으로 들어서면 박물관과 교회를 갖춘 비교적 넓은 공간과 만난다. 사진 촬영이 금지라 외부만 촬영할 수밖에 없었지만 교회 내부는 성경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벽화를 만날 수 있다. 높은 천정까지 화려하게 장식된 성화들은 기독교인이라면 큰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금빛의 기하학적인 무늬와 붉은색이 주조를 이루는 벽화는 이 교회를 매우 성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아르메니아 인들의 탁월한 감각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 맞은편 박물관은 아르메니아인들의 섬세한 세공 기술을 엿볼 수 있는 곳인데, 현미경을 이용하여 머리카락에 성경구절 새겨 넣기, 현미경으로 봐야 해독 가능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책, 정교하게 조각된 십자가 등. 이것을 보면 왜 샤 압바스가 아르메니아 인들을 이곳에 데려 왔는지 이해할만하다.

한편 박물관 좌측 입구에는 아르메니아에 대한 터키의 학살을 고발하는 여러 권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TV 2대에서는 학살을 고발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필름이 돌아간다. 그 옆의 설명에 의하면 1915년 터키는 정치적인 이유로 터키 동부(터키 땅)에 있는 아르메니아 인들을 15만 명 학살하게 된다. 이 부분의 진실 공방은 현재도 터키와 아르메니아 사이에서 진행 중이다. 아무튼 이 당시 많은 아르메니아 인들이 자신의 고향을 포기하고 이란과 시리아, 레바논 등지로 이주하게 되었다.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에는 많은 수의 아르메니아 인들이 아르메니아 스퀘어를 중심으로 모여 산다. 이곳은 1900년 초 대거 이주한 아르메니아 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지역이다

중동 서쪽 지역, 특히 터키, 이란과 코카서스를 포함하는 지역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은 마치 레반트 지역의 유대인 같은 인상을 준다. 주위의 이슬람 국가들 속에서 섬처럼 존재하는 기독교의 형상이 그러하고, 교육열이 높고, 소규모 집단으로 뭉쳐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를 악착같이 지키며, 또는 때때로 정치적으로/종교적으로 탄압당하기도 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유대인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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