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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산의 일출

by YT

12월 17일 밤 10시 겨울 옷 대용으로 여분의 담요를 들고 소형 버스에 승차, 소피텔에서 3명의 미국인을 더 태운 후 시나이의 산속으로 출발. 모세산을 찾아가는 길은 아카바만을 오른쪽에 끼고 달리다가 왼쪽으로 전환하는 코스로 진행된다. 산속의 길은 포장도로와 비포장길을 번갈아 가며 달리고, 몇 개의 경찰 검문소를 지난다.

흐릿한 달빛과 버스의 라이트만을 의지해 달리는 이 길에선 어슴푸레 산들의 윤곽만이 눈에 들어 올뿐, 사막을 달리는지, 산속으로 들어온 건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다. 버스의 제일 뒤에 누워 비스듬히 창문을 통해 바라본 하늘엔 하얀 초승달과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린다. 근래에 하늘에서 이렇게 많은 별들을 바라보기는 처음이다. 맑은 산속 공기를 가르며 떨어지는 별빛은 웬만한 달 빛에 견줄 만하고 반짝거림은 보석 빛을 능가한다. 밤하늘에서 선명한 오리온과 카시오페아, 산에 걸린 북두칠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다리꼴 모양의 소형 버스 유리창을 통해 누워서 별들을 감상하는 것은 또 하나의 큰 즐거움이다. 덜컹거리는 자동차의 소음과 함께 내 눈에서 별들이 움직인다. 산을 오르며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두 번 보았다.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머리 위 별들의 군무를 감상하며 2시 30분 버스는 모세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인 성 캐터린 수도원의 커피숍에 도착, 약 4시간 30분을 달려온 것이다. 수도원 커피숍(수도원과 관계는 없음)엔 우리 외에도 일출을 보기 위해 야간 산행을 하려는 다양한 외국인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 중 러시아인들이 상당히 많다. 이 수도원의 바깥 화장실엔 이용료가 1LE라는 문구가 영어, 아랍어, 러시아어로 표시되어 있으며 커피숍 벽면엔 러시아어 관광포스터가 붙어 있다. 내가 다닌 국가들 중에서 러시아인들이 이렇게 많은 곳은 이곳이 처음이다.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단체 관광객들인데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성 캐터린 수도원엔 러시아 여왕이 기증한 모자이크와 이콘들이 있으며 이 수도원의 부분 부분이 러시아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러시아에 많이 알려져 있으며 러시아인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3시부터 등산 시작, 울타리 같은 수도원 주변 산들은 검은 윤곽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높은 산(성 캐터린 산)에 걸린 오리온의 가운데 나란한 3개의 별이 인상적이다. 수도원 옆의 본격적인 등산로에 들어서자 컴컴한 공간에서 현지 이집트인들이 산적처럼 우릴 에워싼다. 낙타를 타라는 호객꾼 들이다. 우리 일행은 10불씩 내고 낙타를 타고 산을 올랐다. 이곳에선 많은 수의 사람들이 낙타를 타고 야밤의 모세 산을 오른다. 이제 기온은 점점 체감 기온 영하를 떠올리게 할 만큼 떨어져 있고 가끔씩 휘몰아치는 밤바람은 야간 산행을 결정한 내 판단을 후회하게 할 만큼 잔인했다. 가져온 담요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썼지만 오른쪽 무릎과 정강이는 완전히 추위에 노출되어 버렸다. 낙타는 어렴풋이 보이는 돌길을 따라 약 1시간 30분 정도 올라간다. 이렇게 낙타를 오래 타긴 처음이다. 점점 발가락은 곱아 들어오고 코 끝엔 감각이 없다. 수많은 사람(가이드는 1천 명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한 500~700명 정도)이 산을 오르며 만들어내는 돌산 자갈길의 먼지는 점점 숨을 조여 오는 듯 목구멍을 텁텁하게 만든다. 높은 낙타의 등에서 바람과 추위를 담요 1장으로 막아내며 오르는 산행은, 오르는 내내 나의 산행 결정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역시 보는 관광이라 등산로에서는 수많은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다. 일본인들은 모두 광부들이 쓰는 이마에 부착하는 전등을 한결같이 하고 있으며(다른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손전등을 이용한다) 일본인답게 깃발(오! 대단한 깃발 민족, 야광 깃발이다)을 선두로 산을 오른다. 내가 알기로 일본인의 70%는 종교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 30% 중에도 기독교인의 퍼센트는 정말 얼마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떼를 지어 기독교의 성지 모세산을 오르는 일본인 단체 관광의 집념이 무섭다.

덜덜 추위에 떨며 등산한 것을 후회하고, 특히 낙타를 탄 것을 후회하고(차라리 걸어 오르는 게 덜 추울 것 같다), 거의 포기 상태에 떨어진 이후에야 낙타에서 내릴 수 있었다. 이곳부터는 비교적 가파른 구간으로 모세산의 옆구리를 따라 700개의 계단(하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계단의 형태는 유명무실하다)을 올라야 한다. 700개의 계단 아래쪽에서 진한 터키 커피를 한잔하고 십계를 받으러 다시 산을 올랐다. 그때가 새벽 5시 30분, 가파른 돌길을 1시간 정도 올랐다. 점점 바람의 세기는 그 기세를 더해가고 어떤 경우엔 날아가버릴 것 같이 강한 바람이 분다. 산을 오르는 곳곳엔 바람막이용으로 담요를 대여하는 꽁꽁 자신을 싸맨 현지인들이 쭈그리고 앉아 있다.

드디어 정상 도착! 그런데 이게 뭔가? 십계의 글귀나 모세와 얽힌 멋진 구조물을 상상하며 올라왔는데 작고 허름한 벽돌 교회가 하나 있고, 그 주위는 온통 절벽의 바위들이며, 이미 와서 진을 친 담요를 두른 관광객들과 모래 먼지를 계속 만들어 대는 바람의 혼란스러움 만이 있을 뿐이다. 산 정상의 몇 백 명은 담요를 두른 체 이제 그 주위가 빨갛게 변한 동쪽을 향해 도열해 있다. 그들 사이사이로 정상의 거친 모래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모든 사람을 평등한 거지 꼴로 만들어 버리는 곳이 모세산의 정상이다. 잠깐 카메라를 꺼내는 사이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오며 환호성을 지른다. 오늘의 해가 그름 위로 그 찬란한 빛줄기를 우리에게 쏘고 있다. 동시에 카메라 후레시가 터지며 사진이 돌아간다. 덩달아 광풍이 불어댄다. 이때가 6시 20분 해는 5분도 못되어 둥실 구름 위로 온전한 둥근 모양으로 솟아오른다. 그리고 하산. 언제나 일출 구경은 이런 식이다. 그 힘든 과정에 비해 일출을 만끽하는 시간은 너무나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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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일출을 보자마자 추위와 바람을 피해 하산을 서두른다. 내려갈 때도 낙타를 타는 이가 가끔 있지만 거의 낙타를 이용하지 않는다. 왜냐면 낙타를 타는 것이 더 불편하다는 것을 이제는 깨우친 것이다. 하산하며 둘러본 모세 산은 신령스러움이 깃들 만큼 험한 바위산이다. 칼 같이 재단된 절벽이 있고 그 절벽 아래엔 굴러 떨어진 바위의 잔해가 있으며, 모세산(시나이 반도에서 제일 높은 산)의 주위 역시 언뜻 보면 햇빛에 그을린 듯한 UAE의 산들을 닮았지만 붉은 속살을 드러낸 바위 덩어리 산들은 더 강해 보이고 위용이 있어 보인다. 금방 세수한 태양은 붉은 탄생의 잔해를 이 우락부락한 남자 산에 뿌린다. 곳곳의 윤곽이 진해지며 음양이 날카로워진다. 하지만 날카로움은 태양이 더 올라가면 안개처럼 희뿌연 거품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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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산은 10계를 받았던 종교적인, 역사적인 유적으로 취급되기보다는 지극히 현대적인 일출 이벤트의 장소다. 모든 사람은 일출이 끝나면 더 이상 모세산에 머물지 않는다. 더구나 무슬림 국가 안에 있는 유대 영웅의 역사적인 장소는 큰 의미를 주지 못하며, 역사적인 종교적인 신성함을 보여주는 어떤 상징물도 산 정상에는 없다. 다만 허름한 교회만이 있을 뿐이다. 정말 너무 추워서 정신이 없어서 아무것도 느끼거나 정리할 수 없었던 올라갔다가 내려가기 바쁜 야간 산행이었다. 바람과 추위는 머리를 단순하게 만들어 버린다.(이것은 2003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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