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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by YT

확장된 발코니의 열어 놓은 동쪽 창을 통해 9월의 햇빛이 오전 내 거실에 머물렀고 여름의 습기와 열기를 덜은 가벼운 가을바람도 오전 내내 거실을 들락거렸다. 9월의 차가운 바람이 반가워 창가에 다가가면, 몇 시간 동안 햇빛이 머물러 달궈진 조그만 바닥의 온기가 발바닥에 느껴진다. 위는 차고 바닥은 따듯한, 나른한 족욕을 즐기는 기분이 된다.

이런 경험은 특정 이미지로 요약된다. 왼쪽으로 해바라기 모양의 해가 비추고, 열을 머금어 붉은, 빛의 입자는 사선으로 거실에 침투해 사다리꼴 모양의 도형을 펼치고 인덕션처럼 바닥을 덥힌다. 그 위로 빛을 뚫고, 파란색의 선선한 바람 입자가 서 있는 나의 상체에 웨이브로 부딪히고 뒤로 부서져 사멸한다. 이것이 오전 내 관찰을 통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나와 햇빛과 바람의 이미지다. 이것은 현상에 대한 관찰이고 통찰이지만, 어떤 미적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은 기하학적인 것일 수 있고, 낭만적인 것일 수 있다.


나뭇잎을 보면 나무속 관을 타고, 이파리 하나하나로 퍼지는 물의 흐름을 상상할 수 있다. 또, 목욕탕의 불규칙한 타일 무늬를 바라보며 사람의 옆얼굴 또는 화난 고양이 같은 구체적인 형상을 상상할 수 있다. 더 재미있는 경우는 공부를 아예 안 해서 문제조차 이해 못할 때, 우리는 OMR 카드에 점선의 지그재그나 사선으로 내리는 비를 상상하여 그려 넣기도 한다.

무언가에 대한 관찰은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고, 이것은 기존 이미지와 영상을 조합한 것이다. TV 다큐에서 보았던 현미경의 세계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관찰에 상상력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물이 나무의 관을 따라 졸졸 흘러가는 소리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우리의 의식은 무의미한 점을 이어 선을 긋고, 어딘가 익숙한 특정 형태를 만들어내는 기적을 보이기도 한다. 또 OMR 카드는 우리에게 어떤 경우 화가의 조그만 캔버스가 된다.

이런 식의 관찰을 나는 ‘미학적 관찰’이라고 명명한다. 왜냐하면 이런 관찰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미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관찰은 매우 신경증적인 것이고, 기존 이미지와 관념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다. 기존의 이미지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관찰에 파고들 수밖에 없고, 이런 관찰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마치 강박과 같은 것, 분출(폭발)과 같은 것이어서 나는 이것을 정신병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미학적 관찰은 향후 좀 더 건조하고, 수학 같고, 정교한 논리 같은 과학적 관찰을 위한 바탕을 이룬다는 점에서 그 사회적 가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미학적 관찰은 미친 짓이고, 개인의 사회적 삶을 좀 먹고, 마음을 병들게도 할 수 있는 정신병적인 것 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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