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486, 586으로 나이를 먹어가며 컴퓨터의 향상된 속도로 불리던 세대에겐 늘 ‘민주화 세대’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이제 60대 초반과 거의 50대 전체를 점유하는 이들은 현재 대부분의 조직에서 의사결정권자의 위치에 올라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논쟁, LH와 관련한 이슈들 속에서 과연 이 세대를 ‘민주화 세대’라는 영광스러운 별칭으로 부르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민주화라면 더불어 살며, 공통 가치에 대한 암묵적인 약속에 기반한 평등 사회이며, 공정한 룰과 위반에 대한 합리적 제재의 정의 사회를 떠올리는 내게, 최근의 정치/경제 이슈는 전혀 그렇지 못하고, 법과 정의는 과거 어떤 세대보다 더 정교하게 뒤틀린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민주화’라는 말에는 강력한 내재된 힘이 있고, 세차게 몰아치던 광풍은 당시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모든 이슈를 삼켜버렸다. 바로 이런 이유로, 너무나 강한 신념들이 우리 주위를 훑고 지나갔었기 때문에, 우리는 미쳐 그 광풍조차 찻잔의 태풍으로 만드는 보다 큰 거대한 흐름을 미쳐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민주화에 눈이 팔려 미처 보지 못한 음흉하고 또, 우리의 진정한 욕망과 끈끈하게 결합된 거대한 흐름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럼 그 거대한 흐름, 민주화 투쟁조차 찜 쪄먹은 거대한 흐름은 무엇일까?
그것은 돈이었다. 이 시기 우리 사회에서는 돈에 대한 본격적인 긍정이 시작되었다. 경영학과는 각 대학마다 최고의 지원 경쟁률을 자랑했고, 대학 주관으로 ‘모의 주식 투자 대회’라는 이벤트가 자주 개최되었고, 경영학과 생이 아니더라도 미시경제와 거시경제 과목은 대학생의 교양 필수 과목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많이 읽혔던 자본론과 정치경제학도 어쩌면 돈에 대한 거대한 우산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경제를 알아야 된다’고 배웠고, 경제신문 하나는 매일 봐야 진정한 교양인이라고 배웠다. 돈을 알고, 돈을 추구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민망한 것이 아니었다. 돈의 추구는 과거 봉건적인 소극적 추구(돈은 따라오는 것이라는)에서 당당히 걸어 나와 떳떳한 것이 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삶의 목표가 되었다. 이것이 1980년대를 관통하던 커다란 흐름이었다. ‘민주화’조차 이 거대한 돈의 긍정에 자유롭지 못했다. 의지에만 기반한 민주화는 필연적으로 욕망과 결합한 돈의 품에 안길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이런 돈에 대한 좋은 이미지 형성(미화)은 사회 전반적으로 파급효과를 가지게 되고, 그중 가장 친밀감을 보이며 결합했던 분야가 정치와 법, 또 언론의 영역이었다. 돈과 권력의 결합은 自然이라고 할 만큼 본질적인데, 1980년대부터는 그 결합 방식이 좀 더 교묘해지는 특징이 있다. 과거 봉건 시대의(1960-70년대 까지도) 결합은 거친 결합으로, 드러날 경우 그 결합 과정의 폭압과 불법적 요소를 쉽게 인지할 수 있었던데 비해, 1980년대부터는 복잡하고 교묘해져서 그 불법성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는 약했던 언론의 제삼자 적 윤활유 효과가 발휘되기도 한다. 언론은 불법을 정치 투쟁으로 호도하기도 하고, 어젠다 세팅을 통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하면서, 정치/경제와 함께 권력의 트라이앵글을 완성하며 ‘내부자들’이 되었던 것이다.
과거 노골적이기를 꺼려하던 돈은 386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우리 삶의 목표와 같은 것이 되었고, 그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층위에서 권력과 결합하게 되었다. 민주화라는 것에 가려졌던 본격적인 자본주의화의 흐름이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