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행기 속 라마단 풍경

by YT

제다 발 터키항공 TK93편이 45분 지연되어 오후 5시 30분에 출발했다. 이제 금식의 눈치에서 벋어 나겠구나! 사실 제다의 조그만 VIP 라운지에서 빵 한 조각과 커피 하나를 마시면서도 엄청난 눈치를 봐야 했다. 특별히 토브를 입은 주변의 사우디 인들이 눈치를 준 것은 아니지만, 그 공간에서 음식을 먹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눈치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점심도 거른 상태라 배는 고팠지만 마음이 불편해서인지 잘 먹히지 않았다. 이제 비행기를 탔으니 제대로 된 식사가 나오리라 기대했다.

이륙하고 30분 정도 지나 식사가 전달되었다. 이런 웬걸, 간단한 종이 팩 도시락이 전달되었고, 그 속에는 물을 부어 마실 수 있는 가루 스프와 치즈와 토마토를 넣은 간단한 샌드위치와 포장된 3개의 올리브와 조그만 플라스틱 종지에 담은 요구르트 소스가 전부가 아닌가? 금식 시간이라 터키 항공에서도 제다 노선은 간단한 식사로 운영하는구나. 콜라를 하나 더 추가해서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고, 시금 털털한 올리브도 하나 먹었다. 이제야 좀 배가 차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다 먹고 나서 주위를 봤더니, 다른 사람들의 종이 도시락 박스는 좌석 앞 선반에 그대로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먹지 않은 것이다. 아예 그 도시락을 받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받아도 먹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 부스럭거리며 우걱우걱 샌드위치를 먹었던 것이다.

해답은 좌석 앞의 모니터 속에 있었다. 이프타르는 해가 질 때쯤 시작되는데(마그렙), 이 마그렙이 계속 지연되는 것이다. 모니터 속의 평면지도에서 커다란 파동 그래프가 겹치는데, 밤과 낮 지역을 구분해 준다. 그 파동의 왼쪽 사면은 필기체 F를 닮았는데, 제다와 이스탄불의 중간을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그 F보다 약간 왼쪽에서 북서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즉, 두 도시 간 위도와 특히 경도의 차이 때문에 해지는 현상이 계속 지체되고 있었다. (제다는 북위21도/동경39도, 이스탄불은 북위41도/동경29도) 실제로 제다에서는 6시 50분정도가 마그렙이지만, 이스탄불에서는 8시 30분 정도 되야 해가 지기 시작한다. 일몰은 북서 쪽으로 비스듬히 운행하는 비행기 안에서 계속 지체 되었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승무원에게 마그렙 시간을 확인하곤 했다.


꾸벅 꾸벅 졸다가 귀를 찢고 들어오는 외침에 화들짝 잠에서 깼다. 비행기 뒤쪽 단체 우무라 객들 속에서 선창이 튀어나오고, 그 선창에 사람들이 단체로 반응하며, 비행기 안은 모스크로 변한다. ‘킹스맨’의 이교도의 광란의 집회 같기도 한 풍경들이 이스탄불에서 제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펼쳐지고 있다. 제다는 하지(특정기간-하지-의 성지순례)와 우무라(하지 기간 외 성지순례)의 출발점이라 많은 승객들이 성지 메카 순례객 들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조용한 비행기와는 다르게, 마치 집회의 현장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알제리 승객들로 기억하는데…, 당시 비행기에서 단체로 선창을 하고 따라하는 것의 내용은 - ‘신이시여 당신의 부름을 받고, 내가 여기에 왔어요. 당신은 전지전능한 유일 신입니다’ – 이다. 우므라나 특히 하지 때 주로 낭송되는 것이다. 2020년 하지를 두고 사우디 국영방송의 채널 1번 메카의 영상은 이 낭독의 구절로 며칠 간 도배되었다.

또, 다른 아랍 비행기들에서는 보지 못했는데, 제다 행 일부 비행기에서는 출발 전 여행객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구절의 꾸란 구절(무함마드가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들에게 읊어주었다는 문장)이 기내 안내 방송과 같이 흘러나온다. 나의 아랍어 선생님이 수업 시작 전 칠판에 ‘비스미 라히 라흐마니 라힘’(전지전능한 신의 이름으로)을 쓰는 것처럼 다소 주술적인 의식이 행해지는 것이다. 현대가 되어도 어떤 의미에서는 주술이 아직 우리 일상의 부분이 되는 것이다. 주술적인 의식들은 인간이 맨 처음 만들어 낸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과정이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내 옆의 아랍 신사는 중얼중얼 무엇인가를 되 내인다. 알아들을 순 없지만 아마도 무사 착륙을 감사하는 듯한 중얼거림으로 보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우디 아라비아의 라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