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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Nov 06. 2021

마네킹

 당시 한적한 국도를 달리고 있었고, 도로변 마을에 이르러 빨간 신호등에 차를 세웠다. 그때 옆으로 슬며시 정차하는 1톤 트럭. 몇 개의 시멘트 포대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공사용 장비와 같이, 안전모를 쓰고 머리가 심하게 꺾인 체 짐칸 뒤쪽에 밧줄로 꽁꽁 묶인 남자를 보았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브레이크에서 발이 떨어질 뻔했다. 내가 사람으로 착각한 그 남자는 도로 공사현장에서 신호수로 쓰이는 마네킹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도로에 마네킹이 많아졌다. 안전복을 입고, 머리에는 안전모도 쓰고, 손에는 빨간 경광등을 들고 위아래로 팔을 흔든다. 멀리서 보면 사람으로 착각이 들고, 갑자기 시야에 들어올 때면 차량으로 뛰어드는 듯하여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도로의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검은 기름때를 묻히고, 어떤 때는 머리의 한쪽이 움푹 함몰된 마네킹을 볼 때면, 비싼 옷을 걸치고, 좋은 백화점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던 그들의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연상으로 나는 공사장 마네킹에서 애잔함을 느꼈다.

 마네킹에게서 느끼는 애잔함은 나의 감정이 마네킹에게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이입은 예술작품 감상을 위한 기본 능력이고, 사람 간 관계에서는 ‘공감’으로 확대되어 도덕 규정을 위한 바탕이 된다. 그리고 감정이입은 정도의 차이에 따라 타인의 평가가 수반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으로 스탕달 신드롬은 감정이입 능력의 최고봉을 보여주고, 잔인한 범죄는 공감능력 없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된다. 이렇게 감정이입은 인간 DNA에 새겨진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본질인 듯 보인다.

 능력으로서의 감정이입은 개인별로 천차만별이지만, 일반적으로 이입 대상에 따라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보통 돌, 플라스틱, 철 같은 무생물보다는 나무, 풀, 꽃과 같은 식물에게 더 많은 감정이입이 일어나고, 식물보다는 동물에게, 그리고 동물 중에서도 사람에게 감정이입은 더 많이 일어난다. 실험용 쥐와 같은 실험동물을 위한 각 생명공학 연구단체의 정기적인 수혼제(獸魂祭)와 위령비는 인간의 감정이 동물에 투영된 전형적인 예다. 그리고 무생물이라 하더라도, 동물 혹은 인간의 형상을 한 것에도 감정이입이 더 잘 일어나는데, 아이들의 인형과 내가 짠한 느낌을 가졌던 마네킹이 여기에 해당한다. 성인용 인형의 판매와 관련하여 사회적인 이슈가 만들어진 것도 인간의 보편적인 능력인 감정이입에 근거한다.

 그리고 이 감정이입 능력은 문학과 예술에 포착되어 비유와 은유의 미적 가치를 만드는 바탕이 된다. 비유와 은유를 포함하는 예술적 표현은 작가의 감정이입 능력이 얼마나 출중한가에 달려있다. 그래서 감정이입은 일종의 능력이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속에서 다양한 값이 메겨질 수 있는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감정이입은 주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들이받는 미친 소와 같은 광포한 것이다. 어쩌면 내가 만들어내지만 도무지 그 원천을 모르고, 어떻게 통제하는지도 모르는 에너지 같은 것이다. 감정이입의 순간 감정 에너지는 대상을 침략하고, 허락도 없이 무조건 대상으로 진입하여 대상의 에너지를 맘대로 가져오고, 마음대로 변형하고, 마음대로 인식한다. 그 이입의 순간은 오래 지속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짧은 시간에 그친다.

 특히 사람 간의 관계에서 감정이입은 열등감이나 우월감 같은 감정을 자극한다. 상황이 어려운 사람에게서 인간은 일종의 우월감과 안도감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에게서는 열등감과 비참함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런 파생 감정은 1차적으로 감정이입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열등감과 우월감과 같은 감정이입이 만든 파생 감정은 인간 정신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마취와 환각 같은 것이다. 우월감은 감정이입이 주는 분명한 환각이고, 열등감은 추후 정신에 의하여 합리화/정당화의 모습으로 가공된다는 측면에서 또 다른 층위의 환각이며, 감정이입의 순간 나타나는 멍해지는 현상은 정신의 마취 상태를 나타낸다. 이렇게 정신의 환각을 자극한다는 면에서, 감정이입은 ‘언제나 내 편’이다. 감정이입은 어쩌면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정신의 자정능력을 위한 최전방의 전초부대 같은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감정이입을 통해 정신의 환각을 경험한다. 그 환각 없이 나는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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