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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Nov 13. 2021

네고왕

 영어도 어렵고, 해외 업무가 익숙하지 않던 시절,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파키스탄에 출장 간 적이 있었다. 당시 파키스탄의 TV 광고 SPOT을 사는 협의를 현지 미디어 에이전시와 진행했는데, 미팅 내내 독특한 그들의 영어 억양을 알아듣기 힘들었고, 우리와는 다른 파키스탄 만의 미디어 판매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 진땀을 흘렸다. 그래서 첫 번째 회의는 제안한 자료를 검토해 볼 테니 메일로 달라고 얘기하고 회의를 마쳤다.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받은 자료를 붙잡고 파키스탄의 미디어 환경과 광고 단가 구조를 이해하기 위하여 연구(?)를 시작했고,  약속한 시간에 회신을 주지 못하자 그들은 그들의 입찰 금액이 높아서 회신이 늦는 줄 오해하고,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좀 더 낮은 가격 제안을 해왔다. 나는 다시 그들의 설명을 붙잡고 씨름했고, 또다시 시간을 끌었다. 그러자 그들은 더 낮은 가격을 제시했고, 결국 내 인생 최초의 비즈니스 협상은 처음 제안 가격의 50%선에서 마감되었다.

 원래 협상은 정보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분석하고, 상대의 전략과 카드를 예상하고, 그에 맞는 우리의 대응 방안을 펴는 비즈니스 중에서도 매우 레벨이 높은 고차원의 단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서처럼, 어떤 경우는 어리숙함이 또, 견디는 시간이 최고의 전략인 경우가 있다. 솔직히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GOOD, A Ha! 같은 짧은 감탄사만 연발하며, (그들의 가격을 이해하기 위하여) 시간만 끌고 있었을 뿐이다. 가끔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운이 해외업무에서 생기는 경우가 있다.

 중동지역 주재원으로 오래 살아온 나는, 주로 ‘장사의 신’이라 알려진, 유대 민족, 아랍 족 그리고 인도인들과 같이 생활했었다. 우리는 우리가 파는 물건의 가격 책정을 ‘가격=원가+마진(%)’의 구조로 생각한다. 즉 원가에서 각종 부대 비용을 더하고 나의 마진을 붙이는 것이 우리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가격 책정의 논리다. 예를 들어 100원짜리 물건이면 우리는 110원~ 150원 정도에 물건을 판다. 그리고 150원을 받았다면 뿌듯하고, 자신의 재주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 장사의 신들은 다르다. 그들에게 ‘가격=고객의 필요’다. 그래서 그들은 협상 전에 고객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가늠해보는 너스레를 떠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너스레의 과정 이후에 가격이 메겨지는데 100원짜리를 1천 원, 1만 원을 부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장사의 신들의 협상 방법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무장하고, 열심히 배운 ‘가격이론’과 ‘협상 이론’을 가지고, 아랍인을 대하면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 기업은 너무나 노골적으로 자신의 필요를 이들에게 드러내어 보인다. 솔직함이 미덕인 우리는, 가끔 협상 파트너 앞에서 발가벗어 버린다. 우리 기업은 대부분 단기 목표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협상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협상의 성패를 결정하는 많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협상에서 배수의 진을 치는 것은 자멸이다. 낭떠러지는 저 멀리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협상의 시간은 상대와의 친밀감을 쌓는 시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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