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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

by YT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던 태권도 학원 버스 뒷부분에 심신 건강과 나란히 쓰여 있던 단어 – 염치. 아이들 심신의 건강을 키우고, 염치를 가르치겠다는 학원의 목표다. 당시 ‘염치’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대비되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한동안 염치를 머리에 넣고, 씹어보고, 두드려도 보고, 굴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염치: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다음 국어사전) – 요즘 우리 사회에서 염치는 조금 뒷방으로 밀린 듯하고, 염치가 밀린 빈자리는 솔직/당당함/Self-Confidence라는 개념으로 채워졌다.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어야 하고, 실리적인 나는 무한 소중하며, 체면이나 명예심 같은 전혀 실용적이지 못한 것은 개나 줘 버리라는 당당함이 주류가 된 세상이다.

염치는 어느 정도 가진 자들을 위한 심리 표현이다. 빼앗긴 사람에게 염치란 개념을 사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염치는 평등을 위한 개념이고, 확장하여 정의를 위한 개념이다. 이것은 니체에게 있어 ‘은총’ 개념과 비슷한 계통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니체 철학은 힘에의 의지로 대표되는 강함의 긍정에 중심이 맞추어져 있어서, 평등과 정의의 개념은 다소 약한 편이지만, 니체는 정의를 강한 자가 아무 대가 없이 약한 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은총)으로 정의하고 있다. 염치도 이런 맥락에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염치도 더 많이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게 느끼는 심리, 감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총과 염치는 약간 다른 점도 있는데, 은총이 강한 자의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것이라면, 염치는 강한 자의 내부로 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부로의 방향성을 가진다는 면에서 염치는 노예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니체가 알면 큰일 날 일이다.) 니체에게서 정의가 완성되려면 ‘은총’과 더불어, 자신의 내부로 향하는 ‘염치’가 보완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의지가 내부(염치)와 외부(은총)로 통합하여 한 사람에게로 체화될 때 정의는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염치 불고하고~’라는 관용구를 우리는 알고 있고, 흔하게 사용한다. 염치는 있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염치에는 ‘불고하고’라는 단어를 붙여서 주로 사용했고, 이런 현상은 굳어져 관용구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염치없음을 표현하는 언어적인 습관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태권도 도장에서도 가르치는 ‘염치’를 정치인들은, 기업인들은 꼭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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