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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Nov 17. 2021

압축성장

 후발기업이 선두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직원을 독려하기 위해 흔하게 사용하는 결의에 찬 슬로건 속 표현이다. 압축성장이란 표현은 은연중에 기업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몇몇 단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3-4명의 직원을 가진 조그만 회사가 번듯한 중소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또,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마치 탈피의 과정처럼, 단계에 맞게 그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것이다. 맞는 옷을 갈아입는다는 면에서, 압축 성장은 단순한 매출 증대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대기업에 맞는 생산 시설을 갖춰야 하고, 그에 맞는 유통이 있어야 하고, 적합한 조직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고, 또 대기업다운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압축성장을 위해서는 한쪽으로 기울어 모든 노력이 쏟아지지 않도록, 다양한 성장 요소 간 균형이 중요하다. 다양한 성장 요소들 중 너무나 민감하여 다루기 어렵고, 한 번의 실수로도 모든 것을 망쳐 버릴 수 있어서, 항상 오너의 주의가 가장 많이 요구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조직이다. 생산-판매의 모든 시스템을 아무리 잘 갖춰도, 균형 잡힌 탄탄한 성장을 끌고 갈 수 있는 그 단계에 맞는, 제대로 된 조직과 조직문화는 필수다. 하지만 타 부문보다, 조직의 탈피 과정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직접적으로는 사람들의 이동이 있고(매출이 늘면 스카우트되는 경우가 많다) 간접적으로는 구성원 스스로 만들어 왔던 조직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는 기업의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압축성장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것은 기업의 성장 논리가 그대로 국가단위로 확장된 것이다. ‘식민지배와 분단, 그리고 연이은 한국전쟁에도 불구하고, 불과 50년도 안되어 아시아의 용을 넘어 G7을 꿈꾸는 대한민국’ - 정말 미치도록 흡입하고 싶은 국뽕의 냄새다. 분명히 외형적으로 한국은 압축성장을 이루었다. 우리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자동차를 만드는 나라고, 세계 1위의 반도체 생산 기업을 보유한 나라다. 하지만 우리의 압축성장은 각 성장 요소 간 심각한 불균형을 만들었다. 마치 우리는 균형을 잃고 코끼리 코 10바퀴 후, 비스듬히 쓰러질 듯 앞으로 뛰어가는 모습이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압축성장으로 뛰어갈 때 저만치 쳐져서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부문은 (여러분도 충분히 짐작하는 것처럼) 바로, 정치다. 인당 국민소득은 높아졌지만 아직 우리의 정치는 그 후진성을 벋어 나지 못하고 있다. G7이 되려면, G7에 맞는 정치 시스템이 정비되어야 하고, 그에 맞는 정치문화가 구축되어야 한다. 특히, 정치는 우리 사회를 끌고 가는 머리라는 측면에서, 그 역할의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잠재적인 폭탄과 같은 것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리고 모든 성장은(정상 성장이든, 압축성장이든) 각 단계마다 시행착오를 거친다. 어쩌면 시행착오, 실수와 혼란은 성장의 필수 조건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시행착오가 극복되면서 더욱 탄탄한 성장을 하게 된다. 아무리 압축성장을 해도, 이 시행착오를 건너뛸 수는 없다. 시행착오는 국가 발전의 단계마다, 이런저런 형태로 우리 사회에, 우리 사회의 단위 조직들 사이에 만들어졌었다. 인당 GNP 5천 불일 때는 그에 맞는 시행착오가 생기고, 인당 1만 불 일 때는 또 그 단계에 맞는 실수와 혼란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시행착오를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슬기롭게 넘어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성장 단계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법칙과도 같은 시행착오를 건너뛸 수는 없다. 아마도 그 시행착오들은 우리의 사회 속에, 우리의 조직 속에, 우리의 국가 속에 여전히 옹이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부담이고 뇌관 같은 것으로, 불이 나면 불꽃을 튀기며 급발진하는 소나무 옹이처럼 잠재되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시행착오를 그때그때 해결하지 못하고, 덮어버리고 성장만을 위해 뛰어온 우리는 우리의 시스템과 조직 속에 많은 얼룩을 담고 있다. G7을 이야기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부정부패의 문제가 있다. 과거 느리게 진행되던 성장의 시기(조선시대)에 있었던 명예심은 압축성장의 쇄도 속에서 개나 줘버렸다. 그리고 ‘절대가치=돈’이라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엄정한 칼날로 단죄할 수 있는 조직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언론의 자정 능력은 상실된 지 오래된 듯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코뿔소처럼 돌진한다. 선진국을 미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겐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는 없다. 가진 자의 갑질이 있을 뿐이다. 바로 이러한 예들이 우리의 압축 성장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이고, 나무의 옹이 같은 상처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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