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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Dec 21. 2021

EPL

 힘과 힘이 부딪혀 불꽃이 튀고, 엄청난 스피드와 감탄을 자아내는 기교에 입이 떡 벌어진다. 특히 겨울의 EPL, 영국의 으슬으슬 추운 날씨와 높은 습도는 선수들과 만나, 증기기관차에서나 뿜어져 나올 것 같은 어마한 양의 흰색 입김 덩어리를 만든다. 공을 치고 달리는 서너 명의 선수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입김은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첫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몇 가닥의 여명을 품은 검은 숲, 돌격을 앞두고 길게 정렬한 기병과 보병의 라인, 그 긴장에 못 이겨 금방이라도 치고 나갈 듯 앞발을 구르는 전투 마들의 입과 코에서 거칠게 뿜어 나오는 하얀 입김 덩어리. 세계 최고의 짐승(?)들이 벌이는 EPL을 보고 있다 보면, ‘스포츠는 전쟁이다’는 통속적인 표현을 실감한다. 축구선수들, 특히 EPL의 프로축구 선수들은 전쟁을 수행하는 전사 같다. 그들 개개인의 압도적인 피지컬이 그러하고, 공에 대한 악착같은 집념이 그러하다.

 현대에도 전쟁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스포츠 덕분에 작은 전쟁들은 많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서로의 생명을 뺏는 야만적인 방식은, 서로의 골문으로 골을 집어넣는 것으로 순화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스포츠는 ‘전쟁의 상설화’다. 가끔 축구경기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과 훌리건들의 광적인 모습이 보이지만, 뭐 어떤가? 그래도 전쟁보다는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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