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단편의 제목을 보르헤스는 앞에 실린 일곱 단편의 묶음에 대한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단편이 작은 소설집의 대표성을 가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 보르헤스는 앞의 단편들에서도 중심 소재로 다루었던 ‘미로’와 ‘책’을 등장시키고, [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에서 다루었던 ‘시간’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완벽하게 공간을 표현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은 사실 시간의 문제를 다룬다. 이것은 과거 ‘그래! 결심했어!’라는 대사로 시작하여 두 개의 삶을 보여주는 개그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데, 보르헤스에게 시간은 선택의 시간이고, 선택은 모든 순간에 포함되고 그래서 시간은 무한의 갈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간은 순차적인 시간이 아니라 동시성의 순환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그에게 공간은 없는 것이고, 시간은 그물망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미로 같은 시간의 그물망이 주인공의 증조부가 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이라는 소설의 은밀히 숨겨진 핵심 주제다. 지극히 일반적인 시간관념을 가진 주인공은 중국학 전문가인 스티븐 앨버트가 들려주는 이런 시간의 개념에서 멀미를 연상시키는 ‘득실댐’을 경험한다. 이렇게 꽉 찬, 득실대는 시간의 망은 살인을 추동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이 단편이 보르헤스 단편에서 보이는 회화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가 주는 이미지가 그러하고, 각각의 지점에서 계속해서 방사형으로 뻗어가는 시간이 만드는 그물망이라는 이미지가 그러하며, 그 그물망이 등장인물의 머릿속에 반영된 ‘득실댐’이라는 표현이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