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각론- [바벨의 도서관]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by YT

그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동안 [픽션들]에 대한 그의 독서가 잘못된 길로 들어 낯선 곳에 빠져버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접하는 보르헤스를 니체와 데리다의 칼을 들고 재단하는 오해를 범하고 있었다. [바델의 도서관]에 대한 독서는 그가 미쳐 알아차리지 못한 보르헤스를 드러내고 있다. 독서하는 사람은 순수하지 않다. 이미 여러 가지 관점과 생각, 사상을 가지고 독서에 임하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이듯이, 아는 만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기존 생각과 관점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책을 읽고, 일반화를 통해 그것을 기억에 저장한다. 사실 독후감이 그러한 것이다. 독후감은 읽은 내용과 경험을 자신의 관점에서 재단하여 쓰는 일반화의 과정이다.

[바벨의 도서관]은 우주의 은유다. 그리고 전반적인 내용은 도서관이라는 무한의 공간에서 ‘완전하고 완벽한 책’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과 화자의 논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서 그(화자도 아니고, 보르헤스도 아닌, 독후감을 쓰는 그)의 읽기 오류가 일어난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에서 보르헤스는 세상의 체계(특히 형이상학)를 인간이 만든 미로로 파악한다. 그리고 [바빌로니아의 복권]에서는 인간 스스로 시작한 우연성의 주입이 신(섭리)이라는 필연으로 떠오른 ‘회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보르헤스의 소설에서 드러난 ‘진리는 하늘(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시간을 통해 만들어왔다’는 것으로 일반화하였고, 그것은 그의 머릿속 많은 부분을 점유하고 있던 니체의 관점이 투영되면서 ‘그래서 그 체계가 가지는 권위는 근거가 없는 것이고, 형이상학의 억압은 멈춰야 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진리는 해체되어야 하는 것’으로 확장을 감행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읽기를 통해 니체를 머리에 담고 있던 그가 저지른 실수다.

늘 그렇듯 [바벨의 도서관] 역시 뒤의 2-3 페이지가 보르헤스의 진정한 생각을 담고 있다. 보르헤스는 여기서 ‘가능성’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혼란으로 보이는 도서관은 먼저 인간 언어의 ‘의미화 작업’에 의하여 어쩌면 파악 가능한 것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화자는 22개의 알파벳과 띄어쓰기 공간, 쉼표와 마침표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무한에 가까운 수 중에서 ‘dhcmrlchtdj’와 같은 단어는 비밀의 언어(울림이 있는 단어나 표현)가 아니므로 무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모든 것이 이미 쓰여 있다는 사람들의 체념은 스스로를 환영으로 만드는 오류를 범한다고 말한다. 세상이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도서관 책들의 유한성을 인식한다면, 무질서가 반복되어 질서가 되는 ‘우아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바벨의 도서관]은 무한의 세상에서 하나의 완전한 책으로 표현되는 신 혹은 진리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의 무시가 그가 저지른 오류다) 비록 파악하기 어렵고, 혼란스럽더라도 인간의 제대로 된 인식 능력이 있다면, 그리고 시간(혼란의 반복은 질서를 만든다)이 있다면 충분히 하나의 신과 만나거나 하나의 진리를 알 수 도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르헤스는 인간의 이성 능력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이제 보르헤스는, 칼을 마구 휘두르는 해체주의자의 모습이 아니라, 체계의 위엄을 허물지만, 분명히 바람직한 체계를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사는 수도승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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