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그는 기억과 시간의 문제를 그의 짧은 글 ‘시간이 빨리 흐르는 이유-유레카!’에서 밝힌 적이 있다. 과거는 기억 속에서 그 사람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부분만 선별되어, 집약된 형태로 저장되고, 의미 없는 일상적인 기억과 시간(양치질하는 시간, 점심시간, 운전하는 시간 등)은 압축되어 누락되기 때문에, 과거를 회고하거나 바라보는 시점에서, 과거는 30년 전체가 온전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만약 나이가 서른이라면), 기억한 부분이 1-3시간 정도로 축약되어 자신에게 보인다. 그래서 과거를 회고하며 뒤를 돌아볼 때는 항상 시간은 빨리 흐른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쏜살같이 간다’는 표현은 문학적 은유가 아니라 우리 기억의 선별과 압축의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밝은 빛의 심연이므로 미래에 대한 생각은 아득하기만 할 뿐이다. 그는 이런 발견을 했을 때, 유레카를 외쳤다.
하지만 모든 감각기관이 생산하는 모든 인식이 기억에 저장된다면 어떨까?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100%의 기억에 대한 가능성과 상상이다. 푸네스는 과거의 기억을 좀 더 줄여보고자 기억에 대한 숫자화를 진행하지만, 이것 역시 너무나 방대하여 포기해 버린다. 화자의 입을 빌려 푸네스의 기억은 탁월하지만, 개념화와 일반화를 그 원리로 하는 사고력에서는 떨어질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 좀 더 중요한 문제는 (보르헤스가 서문에서도 얘기했듯이) 불면의 문제다. 모든 세세한 기억의 그물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 나오는 분화 하여 무수한 가지로 터지는 시간의 그물망과 유사하다. 잊어버리지 못하는 기억은 ‘현실의 열기와 압력’이 되어 불면을 일으키는 것이다. 기억은 바이러스와 같아서 푸네스처럼 몸속에 창궐하면 그 숙주는 살 수가 없다. 숙주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기억만이 있어야 한다. 기억은 누락되고, 압축되고, 편집되어야만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기억이 그래야 그 숙주인 사람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