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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Dec 24. 2021

통속소설과 문학성

[빅픽쳐] 더글라스 케네디

 기발한 착상,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 폭발적인 스피드 –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픽쳐]에 대한 요약이며, 마케팅을 위한 메시지다. 한 사람의 두 번의 죽음이라는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살인을 위장하며 치밀하게 준비하는 주인공의 행동에 긴박함이 흐르고, 장면을 휙휙 넘기며 진행하는 이야기의 빠른 전개는 책을 읽는 내내 그의 방광을 긴장시키곤 했다. 잘 팔리는 소설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책은 실제로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삐걱대는 와이프와의 관계와 사진작가의 꿈을 포기한 체, 따분한 일상에 지친 주인공 벤, 어느 순간 아내 베스의 외도를 목격하고, 그녀의 외도 대상인 사진사 게리를 우발적으로 죽이고, 그의 시신과 주변을 아주 치밀하게 수습하고, 먼바다에서의 요트 폭발을 통해 완벽 범죄에 성공한다. 죄책감과 위기감에 젖은 그는 서부를 향하고 그곳에서 우연히 찍은 그의 인물 사진이 뜻하지 않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만,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그의 상황과 사진사로서의 욕망 사이에서 잠시 갈등한다. 하지만 성공의 정점인 전시회에서 그는 발각의 위기에 직면하고, 탈출하지만 게리로 살아온 벤의 정체를 파악한 지방신문 기자 루디를 맞닥트리게 되고,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루디의 심하게 훼손된 사체 덕분에 경찰은 루디를 게리로 오해하게 되고, 벤은 천재 사진사의 예술적 죽음이라는 환상을 세상에 남긴 체 두 번째 죽음을 맛본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 앤과 다른 마을로 이주하여 다시 자신의 세 번째 삶을 살게 된다.


 이 책은 그의 머릿속에서 한 편의 멋진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었다. 책을 읽어가며 그는 자동차로 붐비는 뉴욕의 도심과 교외의 잘 가꿔진 단독주택 단지, 서부 산맥 속 눈 내리는 산속을 누비는 자동차를 명확하게 머리에 떠올릴 수 있었다. 본질적으로 독서는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그 이미지는 자신의 기존 이미지의 바탕에서 다른 이미지와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그가 읽은 [빅픽쳐]는 그가 보았던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 미국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상, 그리고 뉴스 이미지들에 기인한다. 

 이러한 머릿속 이미지들은 동시대적인 것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미지 라이브러리’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아마 작가인 더글라스 케네디가 소설을 쓰며 상상했던 이미지들과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이런 이미지가 동시대적 요소를 지니며, 모든 이의 머릿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빅픽쳐]의 ‘문학적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그가 떠올린 이미지는 창작이 아니라 모방이며 조합이기 때문이다. 문학성은 이 세계의 ‘이미지 라이브러리’를 확장하는 것에 관여한다. 이미지 라이브러리에 저장되는 것은 새로운 것, 독창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미지 창고는 조합을 통해서도 확장될 수도 있지만, 조합의 유효기간이 지나면 그 본질적이 못함으로 인한 휘발성으로 날아가 버린다. [빅픽쳐]가 독자의 머리에 만드는 이미지는 상투적이며, 옆 영화 창고에나 어울리는 것일지 모른다.

 또, 이미지의 익숙함과 보편성 외에 [빅픽쳐]의 문학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주제의식’이다. ‘소중한 가족’, ‘나의 꿈을 찾는다’ – 이 개념들 역시 매우 동시대적이다. 우리 시대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는 개인의 꿈과 자유, 가족의 소중함과 같은 것을 무한 변주하여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미 이런 주제의식에 너무나 익숙한 것이다. 여기서 그는 독서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주제의식의 상투성, 보편성과 동 시대성이 문학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됨을 알았다.

 그래서 문학성이 있다는 것은 희소해야 하고, 어느 정도 시대를 앞서가는 아방가르드적인 부분이 있어야 된다. 아니면 통속소설에 머문다. 더 이상 분화되고, 들여다볼 수 없을 것 같지만, 여전히 문학에는 미적인 자극을 만드는 부분이 존재한다. 보르헤스나 나보코프에서 보이는 형식적인 부분에서의 미적인 감상이 있을 수 있고, 도스토옙스키처럼 인간의 심리적인 부분을 가르고 그 속에서 묘사나 표현을 찾는 내용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문학의 가치는 아무도 예상 못한 창조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희소성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또, 그 희소성은 어느 정도 동시대적인 것을 벋어나 다만 몇 년이라고 앞서가는 아방가르드적인 것이어야 한다. 많은 수의 화가들과 작가, 예술가들이 사후에 제대로 평가받는 것은 이런 예술성/문학성의 시대를 앞서가는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범인은 동시대에 머물며, 그 동 시대성이 ‘신파’로 퇴화되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신파는 그에게 과거로의 퇴보, 흔한 것, 관성을 의미한다. 동시대에서 아방가르드로 점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하얀빛과 같아서 그 알 수 없음이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빛으로 뛰어간, 단지 몇 명의 개구리 만을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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