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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Jan 06. 2022

굳어짐

 학교 주변 건널목에서 수신호 깃발을 내려 주시던 분들이 모두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고, 매일 같은 분들이 서 계시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오래전 아내는 후줄근한 녹색 모자를 쓰고, 때가 꼬질꼬질한 노란색 깃발을 들고, 아이들과 집을 나서며 일주일에 한 번 강제 동원된다는 사실에 불만을 토로했었다. 동원은 학교 어머니회의 자율적인 결정이었고,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 아침잠이 많은 아내는 내키지 않지만 따라야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상황이 바뀐 듯하다. 추측컨데, 학부모들의 자율적인 행동으로 시작된 녹색 어머니회의 교통안전 캠페인은 학교나 지역 자치단체로 편입되었고, 이것은 이제 돈을 주고, 노인 분들을 동원하는 것으로 변화된 듯하다. 그래서 매일 같은 분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학교에서 하는 행사는 대부분 학부모들의 차지라고 한다. 학교의 크고 작은 행사는 학부모들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된 것이다. 왜 아이들의 소풍 행사를 어머니회에서 기획하는가? 전체는 아니더라도, 게임을 위한 도구 제작, 선생님들의 도시락 등, 처음에는 흔쾌히 시작했던 것들이 이제는 굳어져 관례화되고, 이제는 응당 학부모들이 담당해야 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학교에서 내는 그리기와 만들기 숙제는 아예 학부모들의 몫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숙제는 전문가 수준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 모두는 우리가 만든 것이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하여, 아이들의 더 나은 학교 생활을 위하여, 또 아이들의 학업 성적 향상을 위하여 우리 스스로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모든 이러한 것들이 독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육아를 너무나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것으로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이제는 그런 행동을 그만둘 수도 없다. 너무나 사랑하는 나의 아이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아이를 뒤쳐지게 할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이 스트레스는 어찌할 것인가? 아이는 우리 욕망의 볼모가 되었다. 꼼짝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우리는 갇혀버렸다.

 이제는 의무로 굳어진 호의가 부담스럽다. 이제는 그러한 호의들이 필요 없었던 것이거나, 과했음을 안다. 하지만 그것을 개인이 끊어버릴 순 없다. 우리 사회가 끊어야 한다. 하지만 누가 그 일을 시작할 것인가? 역시나 우리 아이의 눈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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