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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Feb 01. 2022

자기희생

메리 보이스 [조로아스터교의 역사]를 읽고

 조상들의 다신교적 전통을 다시 정리하고, 의미를 덧붙여 새로운 체계를 세운 인물이 예언자 조로아스터다. 이 과정에서 덧붙여진 의미는 강박에 가까운 ‘선/악’이며, ‘선/악’은 다신교의 전통과 조로아스터교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된다. 하지만 메리 보이스의 책 [조로아스터교의 역사]에서는 어떤 것이 선한 행동이고, 어떤 것이 악한 행동이라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고, (뭉뚱그려) 매우 개념적인 설명을 하는데 그친다. 우리는 善에 대한 개념조차 흔들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길거리의 거지를 보고, 그의 깡통에 동전을 던져 넣는 것은 善인가? 혹시 그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고, 그의 나태함을 기르게 만드는 惡은 아닐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이 책이 선의 구체적인 형태와 설명을 빠트렸을 수도 있지만, 고대에는 선에 대한 개념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선에 대해 같은 관념을 공유하고 있어서 굳이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암튼 책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일반적인 개념을 적어보면 교만, 분노, 게으름, 시기는 인간이 경계해야 할 악이고, 공정함, 온전함, 의로움 등은 선의 영역에 속한다. 

결국 선의 승리로 끝나는 우주의 역사이긴 하지만, 조로아스터교의 세계는 선과 악의 투쟁의 場이다. 몇 천년의 시간 동안 선과 악은 앙그라 마이뉴가 이끄는 다에바(악신)에 대항하여 창조신 아후라 마즈다, 그의 여섯 아베샤 스펜타(조금 작은 신), 그 외 수많은 조그만 개별 신들 그리고 영웅의 영, 과거 조상의 영, 현재의 인간이 하나의 팀이 되어 악을 물리치고, 과거 창조의 시간의 온화하고, 질서 정연한 바람직한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때 인간의 도덕적인 삶과 제의는 직접적으로 악을 물리치는 힘이 되고, 선한 신들의 기운을 북돋우는 필수적인 방법으로, 인간은 이렇게 선의 편에 서서 다가올 최종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럼 인간은 모두 앞에서 언급한 공정의 감정, 의로움의 감정을 지키며 묵묵히 일상을 살면 되는 것일까? 아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종교다.

조로아스터교에서 기도의 목적은 단순한 개인적인 바람과 소망의 수준을 넘어선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질병과 죽음도 악으로 포함하며, 이 역시 인간들의 선한 의지와 활동들에 의하여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상정한다. 이것은 다분히 종교적인 장치로 확장되는데, 불결에 대한 정화, 기도와 희생제의 등이 질병과 죽음의 악으로부터 선을 수호하는 장치가 된다. 그래서 일반적인 도덕의 항목에 인류의 공통 소망을 포함함으로써, 종교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여기에 종교적인 형식에 대한 세세한 규정이 만들어지고 명문화되면서 고대의 다신교와는 차별화되는 근대적인 의미의 종교로 완성되는 것이다. 

발생의 관점에서 볼 때 종교는 도덕을 끌어들이지만, 종교가 하나의 세력으로써 성공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종교의식은 필수다. 종교의식에 비해 도덕은 한낱 곁다리로 보이지만, 도덕이 결여된 종교가 있을 수는 없다. 도덕은 정당성이라는 명분을 특정 종교의 확장 과정에 쥐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도덕은 종교의 틀 속에서 원초적인 바람인 질병과 죽음의 극복, 내세에서의 평화와 같은 것으로 옮아간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질병과 죽음의 극복 자체는 善이 된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 오늘날과 같은 기도를 포함하는 ‘제의’가 끼어들게 된다. 이런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서 종교적 제의는 신성한 것, 선한 것, 착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를 종교일 수 있게 하는 본질은 제의에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여기에 아리얀족의 전통에 원류를 둔 순결이라는 항목을 구체적으로 추가함으로써 조로아스터교도들을 이교도와 구분하여 경계 짓고, 종교적/집단적 단단함을 모색한다. 이것은 매우 정치적인 과정이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콘스탄틴]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콘스탄틴에게 “너는 신을 만나서 신의 존재를 알지만, 자기희생과 믿음이 없다”라고 말하며 지옥에 갈 것을 고지한다. 여기서도 종교는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희생’인 것이다. 초보적인 믿음 다음에는 제물을 통한 희생이든, 돈의 기부이든, 자신의 시간과 조직에 대한 봉사든, 신과 대화하는 방법으로써 기도이든 어떤 형태의 희생은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종교다. 종교의 본질은 자기희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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