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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Feb 04. 2022

다신교와 일신교, 그리고 이성

메리 보이스 [조로아스터교의 역사]를 읽고

 종교의 발전에서 고대의 다신교는 점차 일신교로 발전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서양인들에게 다신교는 인류의 유치한 유산으로 인식되었다. 다신교에 대한 원시적인 인식은 일상의 사물이나 생물에 대한 경외를 포함하는 토템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다신교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개념에 기반하여 신을 설정한 조로아스터교는 일신론의 종교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들 조상의 다신교적인 전통 속에서도 정신적인 의미를 읽을 수도 있지만, 예언자 조로아스터는 본격적으로 개념을 신으로 만들어 체계를 세웠다. 또 그 개념의 신들에게 실제적인 대상을 하나하나 복속시키며, 정신과 물질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논리적으로 탄탄한 신들의 체계를 만들고 있다. 창조신 아후라 마즈다는 창조를 통해 그를 도와 악을 물리칠 여섯 불사자(아메샤 스펜타)를 만드는 데, 보후 마나(선한 의도), 아샤(의로움/질서), 크샤트라(통치권/왕국), 아르마이티(헌신/복종), 하우르바타트(온전함), 아메레타트(삶)가 그들이다. 개념을 가진 이들은 아후라 마즈다의 창조에 의하여 생기는 동물/식물/하늘/땅/물/인간과 같은 구체적인 것들과 개별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또 서로 협력하여 다에바(악마)에 대항한다. 조로아스터는 정신적인 개념과 구체적인 물질의 형태를 아우르며 매우 탄탄하고 복잡한 체계를 만들었다. 이것을 통해 세상의 질서 아샤가 불결하게 되지 않도록 정화를 강화했다. 

개인적으로 여섯 아메샤 스펜타 중 아샤와 보후 마나의 개념이 매우 의미심장한데, 아샤는 태초에 존재하는(최고의 신이 의도한) 요소 간의 완벽한 질서를 상징하는데, 이것은 이미 존재하는(진리인) 세상 운영의 원리와 균형 상태를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보후 마나는 개념적으로 칸트에 의하여 주목된 선의지를 연상케 한다. 조로아스터는 매우 지적인 작업을 통해 조로아스터교의 세계관을 창조하고 있다. 최고의 창조신 아후라 마즈다가 누구인가? ‘지혜의 신’이 아닌가? 이미 조로아스터교 안에 합리적 이성은 ‘마즈다(지혜)’로 표현되어 있다.

다신교가 일신교로 대체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이성으로 보인다. 조로아스터는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통합을 명증한 논리를 통해 세우고 있는데, 타 유일신교 역시 비슷한 논리적 탄탄함을 보유한다. 일신교로의 변화 과정에서 교리 체계의 논리적 탄탄함에 더하여 중요한 것은 제의, 즉 정교한 제례 의식의 정교화와 명문화일 것이다. 이 역시 이성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다. 조로아스터교, 카톨릭, 이슬람의 정통 제례는 다양한 상징과 의미와 철학 체계를 포함하고 있다. 이 제례의식을 통해 조로아스터교를 포함한 일신교는 질병과 죽음을 극복하고 악으로부터 선을 구하려 했고, 내세의 축복과 평화를 구하고자 한 것이며, 그 속에 일상의 지침으로써 도덕을 포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탄탄한 제례 의식은 사제 계급의 강화라는 정치적인 목적을 부수적으로 얻는다. 현대에 와서 개신교는 이 과정에서 교리는 그대로 두었지만, 제례를 간소화하고, 제례는 단순한 기도로 통합하였다. 당시 사제 계급의 현실 정치적인 이슈의 반대급부로 부상한 것이지만, 어쩌면 이는 종교의 반을 잃어버린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현재의 기도(제례)는 이성을 가진 인간 존재의 믿음에 바탕을 둔 것으로, 자본주의에 맞는 이기적인 개인의 기복으로 점점 변해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탄탄한 교리와 더불어 제례의식으로 구성되는 것이 보다 합당해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이기적인 이성이 신이 되어갈 것이다. 종교의 본질인 제의가 없다는 것은 무신론에 근접하는 것이다. 현대의 일신교는 무신론으로 가는 과도기인지 모른다. 종교는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그리고 무신론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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