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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Feb 23. 2022

정치의 조건

마키아벨리 [군주론]을 읽고

 마키아벨리 [군주론]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정치를 종교와 윤리로부터 분리한 근대 정치학의 기초’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읽기를 통해 [군주론] 저변에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정치학의 당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마키아벨리의 논의는 종교라는 무거운 안개에 덮여있던 중세의 분위기에서 방편적인 정당성을 가질지 모른다. 만일 정치학이 진정한 학문일 수 있고, 사람 사는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라면, 마키아벨리는 정치학을 구성하는 최소의 필수 조건에 덧대어진 염치’와 내부적으로는 ‘양심’이라는 것을 지워버렸다. 즉, 중세 정치학이 근대 정치학으로 변하면서 치와 양심은 제거되었다.

 마키아벨리에게 소위 현실적이라는 노골적인 접근을 가능케 한 것은 그가 종교가 윤리를 무단 점유하던 시기를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군주론]에서 종교와의 분리를 시도하면서 종교와 강력하게 붙어있던 윤리, ‘같이 사는 사람들의 공통 규범’을 같이 폐기함으로써, 인간 세상이 야만/야생의 시대로 복귀하는데 본의 아니게 기여했다. 이런 근대의 정치학이 현대로 이행하면서 그의 후손에 의하여 논의는 더욱 교묘해지고, 더욱 거칠어져 인간 세상은 마치 ‘돈 놓고 돈 먹기’의 야바위 판이나 ‘동물의 왕국’, 세렝게티 초원으로 변했다. 이제 염치는 조작 가능한 이데올로기로 변화했고, ‘양심의 가책’은 개에게 던져진 앙상한 뼈다귀가 되었다. 더욱이 양심의 가책은 개인의 마음 건강을 위하여 몇 번의 논리 비약을 통해 ‘선의’로 포장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현실정치를 떠나서, 적어도 정치학이라는 학문에서 윤리의 포기는 야생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학문으로 개발된 정치학에 윤리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양심이 없다면, 인간은 다시 야생으로 회귀한다. 어쩌면 과거의 야생보다 더 처참한 야생이 펼쳐질지 모른다. 이런 야생 상태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마키아벨리와는 다른 인간성에 대한 전제가 필요하다. 부정적인 인간이 아니라, 긍정의 인간관을 세울 필요가 있다. 긍정의 인간관에서는 믿음이 만들어지고 믿음 위에 최소한의 도덕이 싹틀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정치학은 적어도 윤리의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한다. 정치가 마케팅이 될 때, 우리는 그러다 다 죽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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