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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Mar 10. 2022

1. [죽지 않는 사람]

[알레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죽지 않는 사람]은 죽음의 문제로 시작하지만 본질은 기억의 문제다. 보르헤스가 이 단편을 쓰게 된 것은 죽음에 대해(혹은 죽음을 생각할 때)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에 – 인간을 사랑스럽고 애처롭게 만들고, 구슬프고 우울하게 만드는 – 기인하는데, 사실 죽음에 대한 이런 감정은 나로서는 다분히 서양적이며, 관념의 집단적인 전승을 통해 학습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이것은 시작과 끝을 가지는 직선의 시간 개념에 기반한다. 보르헤스는 (적어도 개인의 차원에서는) 시작과 끝을 이어 원으로 만들려는 기획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르헤스의 원은 너무나 커서 길게 늘어지는 무한하고 영원한 직선의 시간이다.

[픽션들]에서 인간이 만든 정교한 미로, 문명과 질서의 상징인 미로는 [죽지 않는 사람]에서 혐오스러운 것, 혼란, 별조차 오염시키는 존재로 묘사되고, 잔악하고 무분별한 느낌을 주는 것, 강박과 미친 신이 만든 것으로 묘사된다. 대칭과 질서를 상징하던 ‘바벨의 도서관’은 혼란과 강박을 주는 것으로 추락하며 마침내 ‘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버려져 폐허가 되어 버린다. [픽션들]에서 보르헤스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두 개념 - 공간과 시간 – 중 시간만이 살아남는다. 영원히 흐르는 시간 속에 공간은 잊히고, 버려지고, 의미를 잃어버린다.

하지만 길게 늘어지는 시간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기억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소설 속에서 퇴행한 호메로스, 혈거 부족의 모습에서 드러나는데, 오랜 시간 속에서 시간은 점차 개인의 기억 속에서 단순화되어 나타난다. (보르헤스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 기억이 일으키는 불면의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여기서 그는 소설적 완성도를 위하여 단순화의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무한의 시간은 인간의 기억 속에서 단순화되어 축약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끝에 이르러 하나의 단어만 남게 된다. 이것은 어떤 상징으로 개인을 떠나 보편화된다. 그래서 나는 호메로스였고, 그 누구도 아닌 사람이고, 나는 모든 사람인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과거와 미래의 (결국은 사멸한) 어떤 것의 상징인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는 것이고, 우리가 말하는 새로운 것은 망각이 다시 환기된 것일 뿐이다. 나는 비로소 [픽션들] 뒷 표지의 ‘나는 미래에 다가올 세대들에게 하나의 상징이 될 것이다.’ 문구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다.(이 표현은 실제 [독일 레퀴엠]에 등장한다.) [죽지 않는 사람]에서 보르헤스는 이야기 속 이야기(로마 장군의 모험)에서 무한한 시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뒷부분에서는 한 겹 위로 올라와 그 이야기를 읽고 있는 사람과 관련하여 기억과 단어(상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보르헤스 소설의 전형적인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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