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T Mar 27. 2022

[사바나의 개미 언덕] 치누아 아체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신의 화살] – [사바나의 개미 언덕] 이전에 작가의 초기 작품으로 소위 ‘아프리카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들이다. 조정래의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으로 구성된 한국 근/현대사 3부작과 어떻게 차이가 있을까? 치누아 아체베를 [사바나의 개미 언덕]으로 처음 접한 나는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다른 두 작가가 어떤 공통점을 공유하고, 어떤 차이점을 드러낼지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예상되는 공통점은 나를 호기심으로 끌어당기기도 하고, 지루함으로 밀어내기도 할 것 같다. 하지만 [사바나의 개미 언덕]의 읽기를 마친 지금, 지루함이 더 커 보인다. 아마 당장은 아체베의 전작들로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다. 내 지루함의 원인은 [사바나의 개미 언덕]이 우리나라의 과거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과 상황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의 상황과 유사하고, 다시 신군부 쿠데타 이후의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억압적인 독재 상황에 대해서 한국인인 우리는 무수한 이야기와 담론을 통해 매우 익숙하다. 그래서 [사바나의 개미 언덕]의 독서는 내게 다소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은 [사바나의 개미 언덕]의 미래다. 아체베는 이야기의 힘을 강조하고, 또 민중의 개인적인 각성과 정치의식의 고양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생각은 - 약 20년 정도 앞서서 상황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 다소 이상적이다. 아체베의 핵심 개념인 ‘이야기’는 (미안하지만) 20년 후 조작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무수히 많은 진짜와 가짜들이 섞인 용광로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 속에서 아체베가 [사바나의 개미 언덕]에서 많은 기대를 걸었던 언론은 이야기를 ‘이데올로기’로 바꾸는 앞잡이가 될 것이고, 갈라 치기라는 이기적인 전략으로 공동체는 분열되어 서로 반목하게 될 것이다. 현재 나이지리아의 정치/사회 상황을 알지는 못하지만, 만약 아체베가 현재 살아있다면 아마 대단히 실망한 언론에 대한 소설을 쓰진 않았을까 예상한다. 

그리고 한편, 과거 역사가 그 이후에 드리우는 그림자의 짙음에 다시 한번 좌절한다. 그림자는 떨칠 수 없는 것이고, 지식인의 한계를 드러내고, 민중의 가벼움을 유발한다. 소설에서 지식인의 한계는 이켐과 크리스의 사고 속에 묻어나고, 대통령 샘과 그 주변인들에 의해 드러난다. 그리고 비비의 가정부인 애거서의 편협함에는 가벼움이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 과연 이켐이 대학생들에게 강연했던, 개인적인 각성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그 가능성을 비비의 의지와 이매뉴얼의 밝은 행동에서 찾을 수도 있을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 낙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