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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Apr 19. 2022

윤리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읽는 중

[군주론]과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윤리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반대 방향이다. [군주론]은 정치를 덮고 있던 윤리의 안개를 걷어 냄으로써 ‘현실정치에 대한 솔직한 통찰’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마키아벨리는 ‘머뭇거리며, 감히’ 저지르지 못하던 반윤리적 정치적 행위를 (공리주의 관점으로 포장하여) 합리성이라 추앙하며 슬그머니 세상에 내놓았고, 후대의 절대 군주들은 그의 생각을 금과옥조로 삼아 권력을 강화하였다. 마키아벨리의 관점은 정치 영역에서 윤리와 양심의 가책을 제거하였고, 이는 후대에 ‘현실과 합리’로 포장되었다.

이에 반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주의의 근원을 밝히는 과정에서, 그 근원을 초기 개신교의 ‘경건주의’에서 찾음으로써, 의도했던 안 했던 자본주의에 도덕적인 후광을 입히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는 막스의 [자본론]에 의하여 혹독한 비판을 받던 당시 현실 자본주의에는 마치 천상의 빛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결국 막스 베버는 윤리를 자본주의에 씌움으로써 자본주의자들이 이후에 사악한 금융자본주의로, 무자비한 제국주의로 가는 이론적인 바탕을 제공하였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마키아벨리의 ‘윤리 제거 접근법’과 막스 베버의 ‘윤리 추가 접근법’은 학문의 영역에서 매우 전형적인 비판의 방법이다. 이는 후대의 사람들이 기존의 질서와 담론을 공격할 때 오늘날까지도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윤리 제거 접근법은 억압(혹은 윤리)을 끄집어 던져 버린다는 면에서 시원하고 통쾌하다. 그리고 그 전투의 전방에서는 ‘솔직함과 당당함’이 전위가 되어 싸움을 이끈다. ‘솔직과 당당함’이라는 개념이 젊은 세대의 전유물처럼 느껴지게 된 것은 그동안 수행해 온 전투에서의 승리에 기인한다. 방법적으로 니체 역시 제거의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니체는 인간의 심리에서 병적으로 퇴화하고 뭉그러진 양심의 가책을 제거함으로써 초인이라는 매력적인 존재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모습 역시, 기성세대들의 관습과 관성의 억압과 체계 앞에 솔직하고, 당당하게 대항하는 것이다.

그리고 막스 베버의 윤리 추가 접근법은 역사를 동원하는 특징이 있다. 현재의 주류를 비판하거나 혹은 새로운 것의 출현을 옹호하기 위하여, 추가 접근법은 늘 후광을 줄 수 있는 권위를 찾았다. 그 권위는 왕이고, 신이며 종교 같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일 때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절대왕정의 ‘왕권신수설’은 신의 권위를 왕에게 입힌 것이고,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에 종교개혁의 역사 속에서 강력한 종교의 후광을 찾아내어 입힘으로써 자본가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불행하게도 이런 두 가지 접근법에서 윤리는 유린당하는 단골이라는 것이다. 윤리의 현실은 이렇게 애처롭다. 시대의 관점에 의하여 이리저리 휘둘리는 역사와 비슷한 것쯤으로 되어버렸다. 윤리는 그저 여기저기 빌붙어 먹는 이데올로기 일지 모른다. 칸트의 묘비명에 새겨진 절대적인 ‘도덕 법칙’은 없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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